양의사와 한의사들 간의 ‘진흙탕 싸움’이 그칠 줄을 모른다.

최근 이들 ‘두 의사집단’의 싸움은 그간 관행적으로(?) 진행돼 온 단순한 상호비방과 꼬투리 잡기의 수위를 넘어섰다. 한쪽 집단이 다른 쪽을 고발하는 것은 물론, 아예 상대방의 ‘의료효과’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까지 취하고 있어 갈등이 극대화되는 양상이다.

이번 ‘전쟁’은 한 장의 ‘포스터’로부터 비롯됐다. 개원한의사협의회는 지난 1월 말 ‘감기치료는 한방으로’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가지면서, 관련 포스터를 회원들에게 배포한 바 있다. 이 포스터엔 “한방은 부작용이 없어 임산부도 부담없이 치료받을 수 있으며, 겁많고 까다로운 아이들도 주사기의 두려움 없이 빠른 치료가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포스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발끈했다. 의협은 “흔히 한약이 생약이라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있으나 실제론 독성이 강해 잘못 복용하면 후유증이 심각하다”며 “검증되지 않은 한의학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것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 더해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는 2월 초 ‘한약 복용시 주의하십시오’라는 포스터를 ‘맞제작’, 배포했다. 이와 함께 내과개원의협의회는 일본 의사가 지은 ‘한방약 효과 없다’는 책자 2만부도 의사교육용으로 배포했다. 사실상 ‘한약의 효능’ 자체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내과개원의협회장이 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한의사로부터 여러 차례 협박전화를 받았다”는 증언까지 내놓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의협은 8일 “현재 일부 한약 재료에 대해 부작용 논란이 일고 있는데도, 한약이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부작용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허위과대 광고”라며 한의사측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의사측은 “의사협회가 일방적 편견으로 한의학을 비방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의사협회측 관계자는 “양방이 독점하다시피하던 의료시장에 한의학이 차츰 입지를 굳혀가자 의사협회측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의협과 그 산하 단체가 한의학에 대해 문외한임에도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의사측은 또 내과개원의협의회가 배포한 일본 책자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개원한의사협의회측은 “(의협측이) 이 책을 일본의 베스트셀러라고 주장해왔으나 실제로는 ‘베스토세라’라는 문고판 시리즈에 불과하다. ‘못생긴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방법’, ‘초등 야쿠자의 범죄학 교실’ 등이 포함된 흥미 위주의 출판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들은 “이 책에서 엄청난 발견이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일부 약의 독성도 국내 한의사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상식으로, 이미 안전 기준이 마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급기야 의협은 자신들이 “한약의 부작용을 파헤치겠다”고까지 들고나섰다.

김재정 의협 회장은 9일 관련 학회 이사장들과 뜻을 모아 국내의 한약제 사용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한약제 사용실태 연구조사단’을 자체적으로 구성, 운영키로 했다. 교수, 개원의 등으로 구성되는 이 조사단은 주로 한약제의 효능과 부작용에 초점을 맞춰 연구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조사단의 활동이 본격화될 경우 의사-한의사간 법적 공방을 뛰어넘는 전면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같은 양-한방 간 충돌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멀게는 치료영역을 둘러싼 분쟁에서부터 가깝게는 한의사의 컴퓨터 단층촬영(CT) 행위를 두고 그랬다.

특히 지난해 12월 법원이 한의사의 CT 장치를 이용한 진단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두 집단간 갈등에 불이 붙었다. 당시 법원은 “현행 의료법은 의사나 한의사의 면허 범위와 관련한 의료 행위 또는 한방의료 행위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며 “관계 법령을 보더라도 CT를 사용한 방사선 진단 행위에 대해 따로 면허제도가 없고, CT를 사용한 한의사의 진단 행위를 금지한 규정도 없다”고 한의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의료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의협은 “한의사의 CT촬영을 허가하는 것은 우리 의료계의 패러다임을 깨는 것”이라며 총력투쟁을 펼치겠다고 나섰다. 이는 결국 최근 ‘포스터 분쟁’으로까지 비화된 갈등양상의 신호탄이었다.

이번 싸움의 핵심쟁점엔 이른바 ‘의료일원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은 한국전쟁 때 체계를 잡았다. 이때 의사 수의 부족 등으로 의사와 한의사 등을 모두 현행 의료법 체계에 포함시키면서 한의와 양의로 ‘이원화’됐다.

의협의 주장은 이를 단일한 체계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협은 8일 청와대와 국회, 보건 복지부 등에 ‘의료일원화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의협측의 주장은 ‘장기적 타당성’과 상관없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지적이다. 의협이 주장하는 의료일원화는 사실상 한의학을 배제하거나, 양의학계 중심으로 한의학을 재편하자는 내용이다. 이런 일원화라면 한의학계는 ‘죽기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최근 불거진 두 집단의 갈등이 지저분한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것은 이런 대목이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내과개원의들을 중심으로 한의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 “내과의 경우 대부분 의료보험이 해당되는 항목들이므로 돈벌이가 크게 안되는 데 반해, 최근 한의원측이 날로 인기를 끌면서 내과의들의 심기를 자극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감기에 대한 처방과 관련, 양의와 한의 중 어느 학문이 효과적인가 하는 ‘의학적 논쟁’이 아니라 ‘소비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돈벌이’가 되는 감기 외에 암 등 주요질환과 관련해선 한번도 두 집단간 논쟁이 없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결국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 두 집단간 싸움은 국민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누려온 의사집단측이 싸움을 키워가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창보 사무국장은 “한방 역시 한약재 중 중국산이 상당수거나, 위생상태가 불량한 점, 스테로이드제 포함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실정”이라며 “의협이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한방이 스스로 공론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의사-한의사 간 분쟁에 대해 “의사와 한의사 모두 최고의 전문가들이므로 명예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북돋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뭉뚱그려 답했다.

이와 함께 김 장관은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노인성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이 분야에는 한의학이 맞는 것 같아서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 정책이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의사집단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두 ‘기득권층’의 오랜 밥그릇 싸움 속에 지쳐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소비자’, 즉 환자들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정부도 두 집단의 싸움에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가운데 환자들은 오늘도 병원순례에만 나서고 있다”며 “국민들은 한달에 5백 벌던 사람이 1천만 원을 벌겠다고 투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의사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그들이 두드려대는 ‘밥그릇 속’에 환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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