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과 바람난 아내, 동성과의 섹스에 탐닉하는 여자, 거짓 신음 소리를 지어내는 여자. 이 세 여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비정상적이라는 것? 그건 "아니올씨다"이다. 이제부터 이 세 여자의 공통점을 찾아나가 보기로 하자. 

바람난 가족-남편 아닌 애인이 필요해

임상수 감독의 2003년작. 극중 은호정은 남편과의 섹스에 지리멸렬함을 느끼지만 아내이기 때문에 응당 잠자리에 들고, 결국 자위로 관계를 마무리하는 여자이다.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 아끼던 아들의 죽음으로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옆집 고등학생과 관계를 갖는다. 어리숙한 학생이 '처음'이라 자신이 이끌어 관계를 맺은 그녀는 결국 그 학생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아이 하나 갖지 못했던 그녀가 바람난 학생과의 섹스(그것도 단 한번에!)에서 아이를 갖게 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호정이 자신에게 주어진 성역할을 거부하고, 제 욕망을 솔직히 표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성에 얽매이지 않고, 제 욕망을 솔직히 표현함으로써 그녀는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남편에게 "넌 아웃이야"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고등학생과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아이는 단지 '바람의 산물'이 아니라 '솔직한 욕망의 발현에 따른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차이-단지 평등한 관계를 원했을 뿐

독일 여성운동가 알리스 슈바르처가 15명에 이르는 여자들과의 상담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질 오르가즘'에 대한 강박관념과 '불감증'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고백이 주를 이루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제법 많은 수의 여성들이 동성과의 섹스를 경험해봤다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동성애자였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성관계가 그녀들을 불감증에 이르게 했고, 우연히 여성과 가진 성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녀들의 고백에 의하면 여성들끼리의 성관계에서는 서로가 느끼고 원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로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가 그녀들을 오르가즘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녀들은 남편 또는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요구함으로써 비로서 불감증에서 해방된다.
 
그녀들은 단지 성관계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2001년부터 해마다 꾸준히 올려지고 있는 연극으로 6살 아이의 이야기부터 75세 노인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버자이너'에 대한 기억은 다 아프다. 남자친구에게 강간 당하고, 애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짜로 신음소리를 연기한다. 그녀들의 버자이너는 그녀들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남자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그녀들의 고백을 통해 알게모르게 억압받아왔던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남몰래 적어온 일기장을 들켜버린 듯한 기분이다. 성교육 워크숍에서 자신의 성기를 처음으로 제대로 볼 수 있었다는 한 여성의 경험담은 많은 여성들을 반성케 할 것이다.

내 몸을 부끄럽게 여기고,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한 성기가 내 몸에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 '버자이너'를 돌아본 여자들은 이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내 욕망을 존재케 하는 주체를 비로소 찾았기 때문에.

세 여자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그들의 공통점은 제도에 의해 관습에 의해 성에 얽매여 왔다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고 제 욕망의 주체를 찾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 비로소 온전한 나를 발견했다라는 데 있다. 세 여자의 모습 속에 감춰진 내 모습이 있었다면, 이제 나도 그들처럼 나를 드러내 보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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