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김모 씨(36)는 요즘 툭하면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 별 것 아닌 일로 아내와 다투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잠도 잘 오지 않을 뿐더러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열이 났다가 한기가 돌고, 뒷목이 뻐근하다. 또 어지러운 느낌도든다. 병이 있나 싶어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한다.

금융권 등 산업계의 구조조정 바람과 함께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요즘김씨와 비슷한 증상으로 정신과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을지의대 을지병원 신경정신과 주은정 교수는 “요즘 구조조정 바람이강하게 일면서 해고 스트레스에 의한 우울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의료원 신경정신과 장환일 교수는 “IMF 사태 극복 후 줄어드는 것같던 우울증 환자가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원인은 ‘해고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유발인자로 작용한 것.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거나 정리해고될까봐 지나치게 걱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또 동료의 정리해고 소식과 경직된 사내 분위기도 그 원인이다.

스트레스 지수는 중병에 걸리거나 중상을 입은 것보다 높다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정리해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으로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장애나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가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실직을 하고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도 있다.

◆심한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하기 어렵다=우울증은 우울한 기분뿐 아니라 불안, 초조, 신체적 불편감,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짜증과 신경질 등 우울감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신체적인증상들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의 동료들조차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이해 못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울증은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기분 장애이나 심하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악화시키는 정신질환이다. 단지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해서 우울증은회복되지 않는다.

또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심한 경우 몇년씩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게다가 사회·인간적 유대관계가 무너지거나 직업에서의 생산성 상실과 무능, 심하면 자살 등을 감행하기도 한다.

◆가족의 따뜻한 배려와 이해 필수적=직업성 우울증에 대한 치료 방법은 기본적으로 통상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과 같다. 즉,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두뇌의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바로 잡고, 적절한 환경적개입을 하는 것. 김씨와 같은 경우는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의 스트레스가 환경적 요인이므로 이를 제거하지 않는한 치료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가족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스트레스의 강도를 대폭 줄여 줄수 있다는 게 전문의들의 조언이다.

을지병원의 주 교수는 “우울증은 환자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질병이아니며,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의의 조언을 따라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희의료원 장 교수는 “책임감이 강하고 경쟁적인 사람, 융통성이 없는 완고한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약한 경향이 있다”면서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보다 유연한 자세로 변화에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결국 스트레스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미래설계 등 현명한 대처와 함께 가족의 따뜻한 이해와 격려가 필수적이라하겠다. 을지병원 (02)970-8303, 경희의료원(02)958-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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