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내에 매듭 짓기로 한 제2단계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부실기업 정리를 위한 은행의 퇴출기업 선별작업이 ‘동방금고 사태’로 차질을 빚을 조짐이다.

채권은행 간 이견을 조정할 신용위험평가협의회 가동이 늦춰졌다. 은행 경영평가위원회의 부실은행처리 방안도 기업 부실판정과 맞물려 고민을 더하고 있다. 퇴출 대상 기업과 구조조정 대상 은행들이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 붓고 있는 점도 구조조정 시간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구조조정의 집행기관인 금융감독원에서 일부 간부의 불법행위가 드러남에 따라 ‘연내 구조개혁 완료가 물 건너 갔다’는 비관적인 견해마저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떨어져 금융당국 주도로 추진되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시각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마저 낳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구조조정 추진 주체는 금융감독위원회”라며 “금감원간부의 모럴 해저드를 구조조정 차질 우려와 연관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명한다.

마지막 고비를 맞은 2차 개혁 현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경제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기업 구조조정 차질=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된 ‘부실 대기업인 대우로 인한 시장 불안’을 연말까지 말끔히 씻어낸다는 방침에 변함없다. 그러나 지난 9월 15일 포드 사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면서 대우문제로 인한 시장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대우차는 1000억원대에 달하는 노동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노동계의 구조조정 저항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반기 들어 표면화된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도 급한 불을 껐으나 ‘사화산’이 아닌 ‘휴화산’이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현대투신도 연말에 다가설수록 1조원이 넘는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못해 궁지에몰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연말까지 워크아웃 기업 등은 물론이고 부실 우려 기업에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정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시장은 이를 믿지않고 있다. 시장에는 대우 몰락으로 깨졌던 ‘대마불사’신화가 악몽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법 제정 지연 여파로 CRV가 연내에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도 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추가 개선작업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금융 구조조정 지연=정부는 지난 9월 국정과제인 ‘은행소유구조 개선방침 확정’을 그 달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10월 과제로 미룬 바 있다. 25일에는 “정기국회에서 은행법을 개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이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정부의 금융 구조조정이 중장기적 안목에서 진행되지 못하고 급한 현안에 매달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9월 과제였던 금융지주회사법 등의 하위규정 제정도 10월 중으로 밀려있다. 주가조작 등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여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우량 은행 간 자율적인 합병이 10월 중 가시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진념(陳稔) 재경부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이 많은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며 “노-코멘트”라고 말했다.

공적자금 투입은행 등 부실은행을 지주회사 밑으로 모으면 거대한 부실은행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많아 이들 은행의 구조조정 방향도 미궁을 헤매고 있다.


■새로운 악재 출현=금감원 간부의 불법행위는 금융당국에 대한 시장 신뢰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부도덕한 금융당국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 불신의 확산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공적자금의 남·오용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40조원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국회에서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았으나 노동계의 구조조정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단계 개혁이 차질을 빚으면 더욱 비싼 대가를 치를 3단계 개혁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시장 불신을 해소하면서 최후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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