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 나라 국민의 소비성향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DJ의 정부는 근면, 검소, 절약, 저축을 미덕으로 삼고 개미처럼 일하던 대한민국 국민을 ‘뒷감당에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쓰고 보라’는 권유를 통해 국민소비성향을 급격히 바꿔 신용불량의 함정에 대량으로 빠뜨린 '능력 있는' 정부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신용불량의 함정에서 신불자를 구해내는 능력은 DJ 정부만도 못하다.

신용불량 사태로 인한 저소득층가계의 재정파탄과 그것이 초래할 내수경기 침체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정부는 당연히 금융시장에서 퇴출된 신용불량자들을 적극적으로 재진입시키는 정책을 즉각적으로 시행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IMF마저 신불자 문제가 한국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도 한국 정부는 지난 1년간 신불자의 9%만 해결하는 등 속도가 매우 느릴뿐만 아니라, 부채부담이 적고 소득이 안정적인 채무자들만 신용회복지원의 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대다수의 가난한 신불자들은 제외돼 있다고 비판했다.

IMF가 지적했듯이 이제까지 정부는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풀어서 부도를 막았고,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직장이 안정된 사람들을 위해선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등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실업자, 주부, 학생, 장애인, 노인 등과 같은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회생지원을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정부는 조만간 신용불량자 중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15만명, 부모 탓에 신용불량에 걸린 미성년자 2,300명 및 졸업 뒤 취직하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대졸자들의 부채를 탕감해 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362만명에 이르는 신불자들 중에서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겨우 16만명 정도로 전체 신용불량자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 신불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한나라당에서는 국민연금 납입금을 일시적 반환금 형태로 돌려받아 빚을 갚도록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국민연금 납입액이 부채보다 더 많은 사람은 16만4천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정책을 통해 신용불량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 또한 전체 신불자의 10%인 36만명이 채 못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정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으로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장기적 사회안전망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률적으로 신불자들의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열심히 부채를 갚고 있는 사람들과 형평에 맞지 않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고 신용불량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빚을 갚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인재산축적보조(IDA, Individual Development Asset)제도이다.

IDA 제도는 빈곤가구가 저축을 통해 빈곤탈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서 이들이 저축을 할 경우 저축액만큼의 금액을 공적자금과 사회적 기금으로 저축해주는 '저축 인센티브' 제도이다.

IDA 제도를 신용불량자 지원에 적용한다면 신용불량자가 빚을 10만원 갚을 경우 금융기관이 10만원을 탕감해주고, 정부가 10만원을 갚아주고, 사회적 기금으로 다시 10만원을 더 갚아주는 매칭펀드(matching fund)식의 부채상환 인센티브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만약 부채상환 인센티브제도가 도입된다면 개인이 상환하는 부채의 3배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신불자들이 신용불량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기가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현행 제도 아래에서 도저히 갚을 엄두를 못 내고 자포자기하고 있는 신용불량자들이 적극적으로 부채상환에 나설 것이며, 그들의 부모 자식이나 친지들 또한 나서서 도와주도록 유도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부채상환 인센티브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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