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안의 2월 임시국회 처리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이 끝났다.
 
양대노총은 여의도와 환노위 회의장 길목을 막았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소회의실을 점거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역할은 한나라당이 맡았다. 환노위 위원장과 법안심사소위 위원 6명 가운데 2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이 4월 법안 처리를 약속함으로써 비정규법안이라는 ‘태아’는 2개월을 더 국회 ‘뱃속’에서 자라게 되었다.
 
이 아이가 현재의 핏줄대로 태어난다면 필시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씨를 뿌린 노동부와 이 정권은 절대 이 아이를 유산시킬 생각이 없다. 스스로 옥동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회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2월 강행처리는 분위기상 ‘사회적 교섭 참가’ 문제를 결정할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3월로 또 미뤄지면서 강경 기조로 나타났지만, 그 전에도 정부 여당은 사회적 대화 기구에 법률의 운명을 맡길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에 참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더라도 여당은 국회 일정을 고집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노동당마저 4월에 법안을 심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비정규법안의 4월 ‘통과’는 논리적으로 확정적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가 진정 이 법안의 완전한 폐기를 원한다면 그 소망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약속을 깨거나 국회가 외부의 힘에 굴복하는 길 뿐이다. 정부 여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일탈’로 볼 것이다. 만삭이 지난 태아를 강제로 중절하는 행위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대화 기구의 핵심을 저버리는 것이다. 민주노총 내에서는 비정규법안과 사회적 교섭을 연계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거나 부분적으로만 그 의의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본래적 의의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률의 제개정에 대해서 국회의 입법권보다 노사정 당사자의 ‘대화와 타협’을 우선 존중한다는데 있다. 또한 노사정이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국회가 이를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래서 노사정 3자 기구를 ‘경제국회’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의 노사정위는 그러한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며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해보지 못했다. 정부가 준비한 메뉴판으로 의제가 제한됐고, 노사정이 합의한 내용조차 국회가 맘대로 칼질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실업자의 노조가입권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 여당이 2월 처리를 위해 내놓은 수정안은 파견업종의 범위를 30개 안팎으로 늘리면서 현행 포지티브제를 유지하는 내용이었다. 기간제법은 그대로였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대화 기구에 절대적인 권능은 부여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제도로서 확립하고자 한다면, 98년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노동의 합법화를 상쇄할만한 역전 드라마가 3자 기구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정규노동에 대한 ‘남용규제와 차별해소’이다.

7년 전 노사정위가 합의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은 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로 인해 발생한 불안정고용과 노동시장 양극화, 노동빈곤층 증가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모순을 바로잡을 때가 왔다. 비정규법안을 둘러싸고 노사의 이해를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에 대당할 만한 비정규보호입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노동부는 이 대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 아이의 탄생과 달리 ‘비정규법안’은 핏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김대환안’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다. 더욱이 이 법안은 무엇보다도 비정규노동자들로부터 환영받는 ‘옥동자’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노사정과 국회가 할 일은 좀 더 분명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하는 비정규법안을 합의하고 그것을 마침내 순산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국회여, ‘봄이 오거든’ 스스로 권위를 내려 진정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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