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지도부는 25일로 출범 2년을 맞은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법안의 국회 처리여부를 놓고 양대노총은 ‘대화중단’과 ‘총파업’을 내세우며 정부와 선긋기를 할 모습까지 보였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과 권오만 한국노총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은 국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던 23일 오전 각각 자신의 사무실에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 “사회적 합의, 큰 결심할 시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법안과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양대노총 지도부는 강도 높게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비정규직 보호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강조했던 것을 감안할 때, 노동계가 현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비정규법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합리화 해주는 법안이다. 정부는 여전히 보호법이라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데, 재계편향적 법안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강 수석은 “국회에서 이 법안을 몇가지 수정하기보다 전체 사회담론으로 형성해서 비정규 보호법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정부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강 수석은 “노동부를 비롯한 강경파는 사회적 교섭이 의미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몰아붙여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보수성을 강화하려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보수적인 정부정책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와 관련 강 수석은 “민주노총이 주체로 나서 '민주노총과 충분히 논의하고 교섭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정부쪽 세력이 중심을 잡게 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그들의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우리 의제를 선정해서 쟁점화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사회통합력을 구축하는게 필요한 시기다”라고 주장했다.

권오만 한국노총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은 “비정규법안은 비정규직을 더 확대해 노동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노동문제를 떠나 국가적 문제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를 충분히 설득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했던 내용조차 후퇴시킨 법안을 어떻게 보호법안이라고 할 수 있겠나. 보호법안이라는 주장은 몰염치하고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교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정부책임이라고 비판했다. 권 총장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 여건조성을 해야 하는데 아마추어적이다. 모든 노동정책은 노동단체에 강요하듯이 압박하면서 사회적 교섭을 하자는 것은 더 억압하려는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권 총장은 한국노총의 독자적인 사회적 합의 가능성도 내비쳤다.

권 총장은 “한국노총은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공감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갈망하지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독자적으로라도 사회적 교섭틀에 대해 큰 결심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빈 공약들, 신자유주의 정책 강화돼”

강 수석은 또한 신자유주의 정권의 한계를 지적했다. “현 정부 노동정책의 기본은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분명하다. 현 정부를 기존 수구보수 세력과 달리 자유주의 분파라고 이야기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종속된 세력일 뿐이라고 본다. 현 정부 들어 비정규직이 더 늘어났고 빈부격차 등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규직 과보호론이나 ‘그들만의 노동운동’ 등 노동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도 심해지고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에서 보듯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으로 노사관계 재편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 총장은 현 노동정책에 대해 “비정규직을 더 양산하는 비정규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실망스럽고 우려스럽스럽지만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이같은 인식은 출범 초기 노무현 정부가 보였던 모습과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공약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공기업의 과도한 민영화 자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등을 내세워 어느 정도 노동계의 기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수석은 “과거 김대중 정권에 비해 전향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2년을 되돌아볼 때 빈 공약이었음이 확인됐다. 비정규직 양산이나 양극화 등을 볼 때 더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권 총장도 “노 대통령이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자본쪽으로 추가 더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노동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 양대노총 지도부는 노무현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 수석은 “공약은 말 뿐이었고 실제 정책은 김대중 정권의 연장선에서 그쳤다. 지난해 엘지정유, 지하철 파업 때 공권력 투입을 하면 노정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고임금 노동자의 파업’으로 매도하며 공격했던 것을 볼 때 수구보수 강경파에 밀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변화’라기보다 노 정권의 근본문제였다는 것.

권 총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노동계가 격렬하게 싸운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파업건수와 파업일수가 줄었다. 우리도 국가경제와 대외신인도를 걱정하고 있다. 다만 보수언론이 노동계 쟁의를 확대, 왜곡했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노무현 정부가 그것을 빌미로 친자본화되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빈익빈 문제들을 외면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초반 노동정책 기조를 유지시키고 강제해내기 위한 노동계의 노력도 부족했다는 반성도 있었다.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지난 1년간 정권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특히 ‘그들만의 노동운동’ 등 이념공세에 맞서 차별해소 등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잘못 짚었다.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이나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은 정권이 오판하도록 만든 사건이다. 비정규법안 강행처리나 로드맵 등 총체적 공세에 저항하면서 더불어 구체적인 대응을 했어야 했는데 즉자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강승규 수석부위원장)

“한국노총 입장에선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잘되기를 바란다. 맹목적으로 비판할 경우 노동계에 몰리고 보수쪽에 몰리면서 정부가 위험해질 수 있다. 노동계는 비판적 지지를 해야 한다고 본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서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도 필요하며, 과거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이 지지해 줘야 한다. 그동안 노동계가 맹목적으로 비판만 한 측면도 있다. 우리가 친노동적 여건을 만들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권오만 사무총장)

노동계 대응에 대한 자평은 다소 차이가 있다. 강 수석은 “정부를 강제할 수 있는 의제들, 예를 들어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나 한반도 자주평화 실현 등을 갖고 사회쟁점화 시키면서 민주노총의 투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해 ‘장기투쟁’의 부족함을 꼽았다. 반면 권 총장은 “노무현 정부가 초반 제안한 사회적 대화틀에 대해 노동계가 확실하게 손을 잡고 교류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말해 ‘적극적 대화 부족’을 아쉬워했다.

노동계가 노무현 정부의 향후 노동정책 방향에서 무엇을 관건으로 볼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는 노동계의 대응방향도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 수석은 “시장개방과 규제완화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속에서 비정규직 확대와 양극화 심화 등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정부가 비정규법안이나 로드맵을 올해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동정책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 수석은 이어 “이에 맞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재편하는 투쟁이 필요하며, 민중적 지지를 얻어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을 형성해 위력적 총파업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 수석은 최근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내부갈등을 의식한 듯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지도부를 공격하는 것은 대중운동 기본순리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 위기에 동의한다면 지도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총장은 향후 노동정책에서 ‘사회적 합의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총장은 “노 정권이 초심을 유지하면서 노조나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합의틀을 만들어 놓을 때, 친노동 정부였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업적을 내놓을 때, 향후 3년간 안정적인 노정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할 예정인 출범 2주년 연설에서 노동계의 이같은 기대와 우려가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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