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연극시장에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김성녀, 김지숙, 박정자, 손숙, 윤석화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여배우 6명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들 6명은 릴레이로 극을 올려 여배우들의 진가를 보여줄 예정이다.

지난 11일 윤석화씨가 첫 주자로 나서 극 ‘위트’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에서 올렸다. 다음달 27일까지 열릴 윤석화씨의 공연 뒤에는 김성녀 ‘벽 속의 요정’, 손숙 ‘셜리 발렌타인’, 김지숙 ‘로젤’, 양희경 ‘늙은 창녀의 노래’, 박정자 ‘19 그리고 80’ 등이 내년 2월까지 펼쳐질 예정이다.

자! 그럼 윤석화씨의 ‘위트’ 속으로 빠져봅시다!

잔잔한 첼로음이 퍼지는 무대 위로 환자복을 입은 깡마른 환자 한 명이 링겔을 꽂은 채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컨디션 어때요?”라고 인사하는 비비안 베어링(윤석화). 이 곳에서는 모두들 이렇게 인사를 한단다. 이 곳이 어디길래?

비비안 베어링은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 시인 존던의 시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 교수이다. 그런데 어느날 비비안은 병원에서 난소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담당의사는 8개월간의 항암치료를 제안하지만 그것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이었다. 그러나 50평생을 인간보다는 오로지 존던의 시 연구에만 매달려 살아온 비비안은 의사들의 임상실험 연구를 흔쾌히 승낙한다.

항암치료가 진행되면서 비비안은 임상학자들의 연구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난소 자체에 집중돼 있다는 걸 깨달으며, 오직 연구만을 위해 살았던 자신의 삶도 돌이켜보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시인 존던은 삶과 죽음을 그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은유로 사용했다. 비비안 역시 죽어가면서 존던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암이 아니라 항암제예요. 일종의 패러독스죠”라고 얘기하는 비비안. 제 몸의 세포를 파괴하는 암때문이 아니라 그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가 오히려 그녀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그녀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시에서 이보다 더 지독한 패러독스를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비비안은 이를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경쾌한 위트라고 얘기한다. 이 상황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리.

비비안의 몸이 야위어가고, 먹은 것이 없어도 자꾸 (그녀의 뇌일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토해내고, 머리가 빠져가고 있는데도, 오로지 연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임상학자들은 “오늘 컨디션 어때요?”라고 물을 뿐이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의사들이 환자에게 가져야 하는 매너의 기본이니까.

갈수록 죽어가는 비비안. 당당하고 강한 그녀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수간호사 수지는 코드를 결정해야 한다고 얘기해 준다. “당신의 숨이 멎었을 때 당신은 코드 블루와 코드 DNR을 쓸 수 있어요. 코드 블루는 심폐소생술로 심장을 유지시키는 거예요. 반면에 코드 DNR은 그냥 그대로 놔두는 거죠. 저들은 분명 어떻게 해서든 코드 블루를 쓰려고 할거예요. 연구를 위해서…” 이 말을 듣고, 비비안이 선택한 코드는 DNR.
“나의 대사는 이게 마지막이예요. ‘죽음도 나를 죽일 순 없다’ 이제 남은 건 의사들이 알아서 해줄거예요”라며 숨을 거두는 비비안. 과연 의사들의 선택은….

비비안의 담당교수였던 애쉬포드 교수는 말했다. “이건 위트가 아니야. 이건 진실이야.” 인간이 빠져버린, 오로지 대상과 사물로써만 존재하는 사회라면 차라리 위트가 낫지 않을까.

관람팁.
연극 관람료는 3만원이지만, 위트 홍보엽서를 가진 사람은 10% 할인, 장애인은 50%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또 연극을 주최한 (주)PMC Production의 타공연 티켓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도 20%를 할인해주는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으니 잘 이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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