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31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5차 세계사회포럼은 현재 대안세계화 사회운동 진영이 직면해 있는 쟁점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첫 번째로, ‘룰라 문제’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3차 세계사회포럼에 이어 이번에도 행사에 참가해 지구적 빈곤 퇴치를 역설했지만, 그는 행사장 밖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집회는 P-SOL, PTSU 등 노동자당(PT) 반대파가 주도적으로 조직했지만, 사실 공무원 연금 삭감, 토지 개혁의 지지부진함 등 룰라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룰라 문제를 단순히 브라질 진보진영 내부 갈등만으로 볼 것은 아니다. 대안세계화 사회운동과 ‘좌파’ 정권과의 관계라는 다소 근본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룰라 정부는 2004년 7월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본 궤도에 진입시킨 ‘기본 골격’에 합의해 버렸고, 미국 주도의 미주대륙자유무역지대(FTAA)에 대해서도 명시적 반대와 대안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적으로도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의 하나인 토지개혁의 문제를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무토지 농민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결국 대안 세계화 사회운동은 브라질 ‘좌파’ 정권의 실험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향후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역시 이번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해 “세계사회포럼이 권력에 대한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주도의 미주대륙자유무역지대(FTAA)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적볼리바르미주대륙(ALBA) 구상을 내놓음으로써, FTAA 반대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주사회동맹을 비롯한 사회운동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대안적 세계를 위한 사회운동과 ‘좌파’ 정치권력과의 관계 맺기 방식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공간’이냐, ‘운동들의 운동’이냐 라는 논쟁은 이번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한쪽에서는 세계사회포럼이 토론과 주장들이 자유롭게 소통되고 교류되는 말 그대로 ‘공간’(space)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공동행동을 위한 결의와 사회운동들간의 조정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반된 두 경향이 이번에도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주기성 -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 - 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격돌했고, 결국 어정쩡한 ‘타협’으로 봉합됐다. 두 가지 입장의 충돌 속에서, 2006년 세계사회포럼은 탈중심적인 방식으로 3~4개의 대륙별 포럼을 가능한 비슷한 시기에 조직하고, 2007년에 아프리카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러한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와 관련해 이번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임마뉴엘 월러스틴 등 지식인 ‘19인 선언’이다. 이 선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세계사회포럼이 행동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선언은 외채탕감, 금융거래 과세, 완전고용과 사회보호, 공정무역, 생명체에 대한 특허금지, 물 사유화 금지 등 경제관련 권고와 국제기구 민주화, 외국군 주둔기지 철폐, 모든 형태의 차별 금지, 정보 접근권 보장 등 12개의 제안으로 이뤄져 있다.
 
이 제안이 세계사회포럼을 지구적 수준에서 행동과 변혁을 위한 효과적인 정치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지, 지식인들의 ‘명망성’에 의존한 위로부터의 해프닝으로 귀결될지 당장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번 5차 포럼은 세계적 차원의 사회의제를 담아낼 수 있는 계기로 세계사회포럼이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음을 확인시켜줬고, 19인 제안이 세계사회포럼의 미래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거리를 제기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에 한국에서는 민주노총, WTO반대국민행동, 민주노동당, 사회진보연대 등이 공동 준비팀을 꾸려 참가했다. 현지에서 반전·반세계화 아시아 민중·사회운동회의와 FTA 대응전략 아시아 활동가 원탁회의 등을 주도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아시아 연대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
 
이러한 한국 사회운동 진영의 노력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서 제기한 세계적인 차원의 쟁점을 실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과 결합시킬 수 있을 때 더욱 값진 인식과 실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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