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중단 선언을 둘러싸고 14일, 2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여야간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장외 공방은 이미 지난 10일부터 시작됐다. 이번 북한 외무성 입장발표의 원인을 ‘정부의 섣부른 대북 낙관론’과 ‘대북 온정주의’에서 찾은 한나라당은 거듭된 논평을 통해 이번 사태로 야기된 ‘안보불안’을 우려, 정부의 입장 천명과 안보라인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북핵대책특위 박진 의원 등은 비료 50만 톤 제공방침 재고 등 비군사적 압박도 주문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 대북정책의 총체적 위기를 부각시켜 대북지원 및 주한미군 재배치에 관한 전면적 정책 선회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향후 전개될 국회구도에서 한나라당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적 호재기도 하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쟁 비화를 차단하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북한의 이번 선언을 “대화의 중단이 아닌 협상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강력한 대미압박전술”이라며 명확한 선을 긋는 한편, 한나라당의 공세를 “섣부른 평가로 국민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논리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적절치 못한 상투적 정치공세”란 것이다.
 
14일 대정부질문에 앞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도 당 지도부는 “남북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해 발언이나 보도는 차분했으면 좋겠다”(임채정 당의장), “민생과 경제를 활성화하고 처리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개혁법안을 처리할 2월 국회를 잘못되게 하지 않을까 걱정”(정세균 원내대표) 등의 발언을 통해 정쟁으로 확대되는 것에 경계심을 표했다. 필요 이상으로 정치쟁점화 될 경우, 작년 정기국회 때부터 계속돼 온 한나라당과의 힘겨루기에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임시국회 전초전은 방송토론에서도 펼쳐졌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북핵 및 6자회담과 관련한 북한의 선언을 놓고 명확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장영달 의원이 북한 선언의 원인을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불심감과 내부 단속에 따른 극도의 불안감” 때문이라 진단한 반면, 홍준표 의원은 ‘벼랑 끝 전술’이란 분석에 근본적 의문을 나타냈다. 홍 의원은 “북핵 위기가 있었던 94년에 비해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이 굉장히 진전됐다”며 “전술 전략 개념만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벼랑 끝 전술’이란 측면만 강조하다 보면 또 다시 낙관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심각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사태를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적 문제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두 의원은 의견을 달리했다. 장 의원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개혁개방 쪽으로 가면서 이나마 신뢰가 확보됐기 때문에 북한이 극도의 대미 선전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전쟁의 위협 속에 들어가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면서 난국을 타개해 나가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대북 정책기조 상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홍 의원은 그러나 북미간 중재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부 정책 때문에 “북핵문제는 한국이 핵 인질이 돼 있는 상황”이라 비판했다. “한국 국민들이 당사자로서 대북 교섭을 하고 북한의 핵 폐기와 인권상황 개선을 요구해야 되는데 정부가 침묵하고 있다”는 말이다. 
 
홍 의원은 대북정책의 ‘상호주의 원칙’을 주장하며, 적절한 대북 압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홍 의원은 “북한 핵 문제나 통일 문제에서 우리가 마냥 대북 화해 정책으로만 일관하다 보니 지난 10년 간 북한 핵 개발은 더 진전이 됐다”며 “그 자체적으로 대북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화해정책을 펴더라도 북한의 핵 폐기 문제를 반드시 내걸어야 하고, 대북지원을 하더라도 북한의 인권상황, 북한 국민들의 인권상황개선을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홍 의원은 구체적 대북 압박 방식과 관련 쌀과 비료 지원 등 “인도적인 경제지원은 지속돼야 한다”면서도, “그 외의 대북 경제협력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장 의원은 “남북간에 전쟁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서는 전쟁방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또한 “미국이 직접 북한 핵 문제를 거론하면서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의 불신을 해소하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이에 끼어서 설득해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중재자적 역할’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대북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장 의원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문제가 후퇴하는 변화가 있어선 안 된다”며 “대북 지원 문제는 우리 생존과도 연결이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외 공방에 이어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본게임에서도 여야간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쟁점화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대정부 공격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즉각적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여당 의원들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며,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의 대북 정보력에 엄청난 문제가 있거나, 국민을 속여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반 장관 사퇴를 촉구했고, 북핵대책특위 위원인 황진하 의원은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북지원 우선에서 국제공조를 기반으로 한 경제 제재 등 비군사적 압박수단 동원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대북 압박수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그러나 “북측이 6자회담의 파기를 거론하지 않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의 원칙과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고, 정치·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역시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의 병행발전이라는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왔고, 이 기조를 당장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며 현 대북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한나라당과의 다른 측면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번 사태의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지속에 있다”며 미국의 책임을 좀더 분명히 지적하는 한편,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북핵 불용’과 같은 대화분위기를 위태롭게 하는 선언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고 미국에 끌려다니는 정부에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은 지난 11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표현한 것과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이 북한의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 보고, 대북특사 파견, 미국에 요구서안 전달, 민주노동당 방북 추진 등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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