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화백(38). 사람들은 그를 ‘0.032평의 테러리스트’라 부른다. 1996년, 불과 ‘이십대’의 나이로 대구 매일신문에 0.032평짜리 만평을 연재하기 시작, 그야말로 ‘신랄한 풍자’로 시사만화계를 강타했을 때 세상은 그의 ‘테러’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대구의 조선일보’ 매일신문에서 그려낸 만평을 통해 ‘대구의 박재동’이란 칭호를 얻은 기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붓을 잡은 지 올해로 꼭 10년. 그 와중에도 그는 결코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붓 끝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진보적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낸 것은 물론, 이른바 ‘개혁진영’에 대해서도 촌철살인의 비판을 멈추지 않은 그를 두고 지지와와 비판자들은 날마다 ‘헤쳐모여’할 수밖에 없었다. 김경수 화백이 그 ‘실력’에 비해 유명세를 덜 타는 것은 어쩌면 그런 ‘테러리즘’ 같은 성역없는 비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사만화계의 어떤 작가는 그를 일컬어 “화풍이든, 뭐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김경수 화백은 테러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세상에 나 싫어하는 사람들 참 많을 거예요.”

그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으랴. 날이면 날마다 신문지면을 통해 위정자의 폐부를 찌르고, 탐욕스러운 경제지상주의자들의 ‘개소리’를 고발하는 그로선 그같은 걱정은 숙명일 수밖에 없는 일.

그를 만난 날에도 그는 그 ‘숙명’을 묵묵히 행하고 있었다. 지율스님의 단식을 놓고 벌어지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는 정부의 천성산 터널 공사강행 의지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것에 빗댔다. 지난 1월 26일자, 내일신문 만평을 보자.

두 칸으로 나뉜 만평 윗부분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현판에 ‘광화문’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그 아래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해 ‘천성산터널’이라는 현판을 쓴다. 그런 만평의 제목이 ‘오십보, 백보’다.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의 틈바구니 속에 지율스님과 천성산문제가 파묻히고 있음을 두 ‘현안’을 연결해 꼬집은 것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날카로움이지만, 언뜻 위험천만해 보인다. 어차피 ‘불편부당’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 박정희 지지자와 노 대통령 지지자 모두로부터 ‘반발’을 살 수 있는 내용 이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고립을 자초하는, 따라서 세상살이 피곤해지게 마련일 ‘셈법’ 아닌가. 

“만평들이 원래 정치의 도구화되기 참 쉽잖아요. DJ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만평 그리기가 참 힘들어요. 쉽게 말하자면, 뭔가 명확하지 않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요즘 들어 아 옛날이여, 하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만평작가들도 그렇다는 거지요. 그러고보면 사는 게 참 똑같아요.”

처음부터 ‘선문답’ 같은 말이 돌아온다. 자타가 공인하는 ‘촌철살인’의 테러리스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혜안같은 인생의 깊이가 묻어난다. 하기야 그의 나이도 벌써 서른 여덟. 재기 넘치는 날카로움만으로 세상을 ‘테러할’ 나이는 지났다.

그래서일까. 그처럼 날선 비판의 붓 뒤엔 ‘아무나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가령 최근 벌어진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그의 시선이 그랬다. 이른바 보수진영 ‘누구나’ 기아차 노조를 공격하고, 진보진영에선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발언할 수 없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 기아차 채용비리와 군부대 인분 사건을 연관지어 표현한 1월 24일자 내일신문 만평.

그는 지난 1월 24일, 내일신문 만평을 통해 기아차 채용비리와 군부대 인분 사건을 연결 지었다.   

‘더러운 X···, 그 중 누군가는 주위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못 견뎌 같이 꿀꺽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에 대해 기자가 “기아차 관련 만평들 중 노조에 대해 따뜻한 시각을 보인 거의 유일한 만평이었다”며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인분 안 먹어봤지요? 그거 다 먹는 방법이 있어요. 약지로 떠서 검지로 먹는 거예요. ‘인분쇼’가 밤에 이뤄지니까 어차피 확인은 불가능하잖아요. 물론 인분 사건은 천인공노할 일이지만, 그렇게 등에 식은 땀 흐르는 분위기에선 그것도 방법이라는 말이예요. 그런데 기아차 비리를 보면서 그게 떠오르더라고. 똥이랑 돈이랑, 어감이 참 비슷하기도 하고. 기사들을 보면, 노조가 엄청난 권력이 있는 것처럼 나와요. 취업희망자 엄마가 돈 싸들고 와서 무릎꿇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보면, 그 돈을 안 먹으면 안되는 분위기도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예요. ‘이건 먹어도 되겠구나’가 아니라, ‘먹을 수밖에 없겠구나’라며 압박받는 분위기. 한쪽에선 ‘아빠 힘내세요’, 어쩌고 하는데 여기에서 노조의 도덕성만을 이야기하는 건 뭔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똥을 먹는 게 만연한 분위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사실··· 똥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궤변일까? 아니다, 그는 지금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이야길 토해내고 있다.
 
“제가 굉장히 위험한 이야길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지금 노조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한다는 거예요. 길 수도 없는 사람에게 날으라고 하는 거죠. 그건 기대가 아니라, 폭력이죠. 결국 변기에 놓인 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게 먼저 사회적으로 고민돼야 할 점 아닌가. 우리가 노동조합에 대해 가지는 어떤 환상들··· 너무 충격적인가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기자도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이런 생각은 며칠 뒤의 만평-노 대통령의 “대학은 산업이다” 발언에 대해 기아차 비리 연루자가 “그래서 산업체도 신규채용 때 대학신입생 입학금 받듯 한 거다”라고 ‘뻔뻔스럽게’ 항변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내 생각의 진실성을 온전히 읽어내는 독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쓸쓸히 읊조린다.

▲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선파문을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빗대 풍자했다.

김경수 화백은 단언컨대 국내에서 ‘가장 바쁜’ 시시만화가다. 그는 지금 일간 내일신문과, 대구 매일신문, 그리고 주간지 시사저널 등 세가지 매체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다. 하루에 한편도 그리기 힘든 시사만평을 날마다 두 매체에, 그것도 주간지까지 함께 그려나간다는 것은 사실 상식밖의 일이기도 하다. 경악스럽게도 그는 이 일을 벌써 5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당연히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남들은 ‘괴물’이라거나, ‘날림’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시간에 쫓긴다는 건 부정하긴 힘든 현실입니다. 하지만 하나 하면서 마감에 쫓기나, 두개 하면서 쫓기나 그게 그거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격이 다른 세 매체에 동시연재한다는 데에 대해서도 대단하다는 시각보단, 각각의 입맛에 맞게 상업적으로 그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뒤집어놓고 말하면, 한 군데에 소속돼서 그렸을 때 역시 그 매체가 원하는 패턴이 아닌 내용은 그리기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시사만화가는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들이죠.”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매일신문과 시사저널은 외부필자 형태로, 내일신문은 계약직 고용관계에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그가 매일신문을 떠난 지난 2000년, 비록 비정규직이나마 어떻게 내일신문에 적을 두게 됐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매일신문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내로라하는 메이저신문들이 그를 ‘꼬셨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저는 원래 마음이 동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민감해요. 예컨대 모든 조건과 환경이 다 좋다고 해도 전화통화하거나, 사람 만날 때 아주 작은 것에 실망하거나 거리꼈을 경우엔 안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내일신문이 가장 마음에 맞았어요.”

그는 적도 많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절대적 ‘우군’을 거느리고 있지 않다. 그것은 ‘대구출신’의 ‘진보주의자’가 겪어야 할 한국적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저를 대구의 박재동이라고들 하는데, 이건 대구의 정서와 박재동이라는 아이콘, 그리고 인터넷으로 인한 변화들이 뒤범벅된 거지요. 무슨 말이냐면, 그 곳에서 저는 어느 쪽도 만족을 시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노빠든, 박빠든, 극소수 사람들만이 공감할 뿐이지···  그 나머지 패거리들은 제가 얼마나 싫었겠어요. 요즘엔 더하죠. 사람들은 시사만화가를 신문사에 소속된 부속품으로 봅니다. 신문사의 가치와 함께 그 만평이 평가받는 거죠.”

그런데 그 ‘통과의례’의 아픔은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도 왔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날카롭게 노무현 대통령에게 비판의 날을 세운 시사만화가였다. 2003년 중반의 일이었고, 당시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어느 시사만화 사이트에 몰려와 그에게 사이버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그는 아예 자신의 만화들을 내려버렸다. 
 
“만약 제가 노 대통령 비판을 어떤 상업적 메커니즘으로 이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참으로 당황스럽더군요. 물론 아직 지켜보자던 지지자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참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이예요. 따지고 보면, YS나 DJ도 얼마나 잘못된 비판을 많이 받았겠어요. 그런데 왜 그 둘은 되는데, 노무현은 안되느냐는 거예요. 나 역시도 개인적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라크파병이나, 환경보존과 개발 문제에 있어서 과거 정책과 다른 게 없더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노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한다는 건, 이율배반이죠.” 

‘이율배반’의 ‘젊은 것’들로부터 염증을 느낀 김경수 화백은 요즘 동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일이 가장 즐겁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남 탓을 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의 실수에 대해선 미안해하고, 남의 실수에 대해선 관대한 ‘촌로들의 놀이’에 끼어서 그는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서초동 법원에 간 적이 있는데 판사 나이가 많아봐야 서른 둘, 셋이예요. 그런데 생긴 지 50여년밖에 안됐을 법조문을 달달 외워서 고시에 패스한 우수학력자인 판사와 그 아이를 길러낸 부모가 이웃과 송사를 했다고 쳐요. 그럼 코메디가 벌어지겠죠. 그 판사의 잣대라는 게 기껏 50년밖에 안된 판례들을 자판기 뽑듯이 뽑아내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그 판사가 자신의 앞에 피고, 혹은 원고로 앉은 사람들의 진짜 히스토리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법정에서 다리 꼬고 앉은 젊은 판사가 옛날 원시사회의 족장들보다 뭐가 낫겠느냐는 겁니다. 젊으니까 진보고, 그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선입견을 저는 경계합니다.”


그는 데뷔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그에게 기자도 ‘선문답’처럼 물었다. 그동안 무엇이 아쉬웠느냐고,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엔 어떻게 살고싶으냐고. 

“될지 모르겠지만, 내 입에 들어가는 건 내가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남이 부쳐먹던 텃밭도 괜찮고, 남의 쓰던 집도 괜찮고. 정말로 진지하게 농사라는 걸 ‘배우고’ 싶어요. 그런데 남들은 그러지 말라고 합디다. 이런 이야길 하면 특히 언론사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바보예요. 우리는 결국 기자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게 되는 것 아니예요. 그런데 기자들이란 게 다른 세상은 몰라요. 그래서도 나는 가급적이면 언론을 접하지 않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세상은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세상을 더 잘 알아요. 우리는 관심도 없는 남의 집 이야길 밤새도록 떠들고 가는 수다쟁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꽃이 지는 세상을 알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해요.”

지난해 말,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누군가의 인삿말에 아래와 같은 답글을 남겼다.  신산스러운 음력의 세밑, 기자는 그를 만나고 돌아오며 그 답글을 곱씹었다. 그건 어떤 따뜻한 ‘테러리스트’가 전하는 세상살이의 메시지였다.

‘(세상 사람들이) 편하게 부자로 산다는걸 폭력으로 느끼며, (스스로) 가난하고 불편하게 사는 법을 배우길….’



사진=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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