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은 참 특이한 곳이다. 가난과 풍요의 풍경이 같이 있지만 알려진 건 ‘부자 마을’이라는 것뿐이다. 또 분명 서울에 있지만 서울의 소란스러움과 부산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가끔 ‘느린 시간’이 필요할 때, 성북동으로 쉽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다. 그럼 성북동으로 느린 시간의 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111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종점에서 아래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심우장’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심우장을 찾을 수 있는데, 성북동에서 이런 골목길과 집들을 만난다는 것이 문득 낯설다. 가파른 골목길과 자그마한 옛날 집들이 운동장 넓이만큼의 담을 두르고 있는 부잣집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꼬장꼬장한 한용운의 심우장

심우장은 마땅한 거처없이 떠돌던 만해 한용운을 위해 지인들이 지어준 집으로, 한용운은 1933년부터 생을 마감한 1944년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 이 집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한용운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총독부를 등지고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한용운이 직접 쓴 글씨와 시집 등도 볼 수 있다. 찾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인지, 집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함인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는 발이 시려운 것을 감수하고 들어가야 한다. 북향집이라 햇빛도 잘 들지 않지만 한용운의 온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심우장에서 나와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이태준의 수연산방을 찾을 수 있다. 이곳은 <가마귀>, <달밤> 등의 저자 이태준이 살았던 옛집이다. 이태준은 이 곳에 살다가 월북했는데, 당시 누이의 딸에게 이 집을 맡겼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딸이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솔잎차가 유명하다. 솔잎향 가득한 차를 마시며, 잠시 다리를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난간이 둘러쳐져 있는 마루와 보온을 위해 문을 세겹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마루에는 이태준의 가족사진도 걸려있으며, 마당에는 작은 우물의 모습도 남아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겨진 곳, 길상사

수연산방에서 성북2동 동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면 ‘길상사’라는 푯말이 보인다.

길상사는 설립계기가 특이해 잘 알려진 곳이다. 원래 이곳은 60,70년대와 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 등과 함께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 자리였다. 그런데 87년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할 뜻을 밝혀 95년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마쳤다. 그 뒤 97년 김영한 여사의 법명 길상화를 따 길상사로 개명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탓인지 길상사는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절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엄숙함보다는 누구를 향해서나 열려있는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한때 술과 노래들이 넘쳐흘렀을 곳이, 현재는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으니 그 역사의 아이러니함이 묘한 매력을 풍긴다.

길상사에는 일반인들도 참선을 할 수 있는 ‘침묵의 집’이 있다. 누구나 이 곳에 들어가 명상에 잠길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누구나 침묵해야 한다는 것. 고요한 방에 들어가 앉아있자니 말많은 기자는 졸음부터 몰려왔다. 참선의 길은 쉽지만은 아닌 길인가 보다.
 


길상사를 다 둘러봤다면 성북동 일대를 돌아다녀보는 것도 좋다. 부자 1세대가 사는 곳으로 잘 알려진 성북동에는 각각의 모양을 뽐내는 개성있는 집들과 외국대사관저들이 많다. 또 작은 사찰 등도 많으니 한번씩 들러보면 하루 종일 성북동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성북동엔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는 시 구절처럼 번지가 없어진 비둘기들이 모두 이 곳을 떠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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