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문들의 ‘도를 넘은’ 광고성 기사들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 혹은 유무형의 상품을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같은 지면에 관련 기업체의 광고를 싣거나, 광고인지 기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저급한 기사를 무차별 생산해내는 행태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1월 17일자 ‘tour월드’ 섹션을 보자. 1면에 골프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필리핀 수빅을 한 면에 걸쳐 소개한 이 기사는 우선 기사인지 광고인지 모를 정도의 예찬으로 일관한다.

기사는 내내 ‘에메랄드빛 바다, 한적한 해변이 있는 작은 무인도, 화려한 요트클럽, 흥미로운 레저 프로그램, 이상적 휴양지’ ‘인간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자연’과 같은 막연한 칭찬를 남발한다. 수빅이 필리핀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떤 교통편을 사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실제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


온갖 리조트와 휴양시설로 가득찬 관광지를 일컬어 인간의 손때가 ‘전혀’ 묻지않았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찬사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았으니 알려줄 정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기사 후반부의 여행 상품소개다. 특정 여행사의 상품을 가격, 코스, 프로그램 내용 까지 상세히 소개했다. 전화번호와 사이트주소 소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렇구나, 별다른 고민할 필요없이 이 여행사의 여행 상품을 쫓아가면 되는구나.

뒷장으로 넘어가면, 아예 이 여행사의 상품광고가 큼지막하게 실려 있다. 신문기사에 소개된 믿을 만한 여행사이니만큼 눈길이 확 간다. 기사로 때리고, 광고로 확인사살하고. 광고효과의 극대화란 게 별 게 아니다. 

이런 광고형 기사들은 총 12면에 걸쳐 9건이 실려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라스베이거스 등 어디서나 한번쯤 접했을 법한 ‘유명’ 여행지들이 나머지 기사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1면 기사를 뺀 나머지 기사들엔 웬일인지 기자들 이름이 빠져 있다. 기자들의 ‘바이라인’이 들어가는 자리엔 <문의: 7**-****>와 같은 전화번호 소개가 등장한다. 이 글이 기사를 가장한 ‘광고’임을 인정이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어디에도 ‘전면광고’ 혹은 ‘PR’란 이라는 표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테마여행, 문화명소기행, 시티투어 등 그럴듯한 표제를 달아놨다. 

물론 ‘진짜 광고’들도 엄청나게 실려 있다. 총 12면에 걸쳐 ‘하단통’ 크기의 광고만 따져도 20여개에 이른다. 업계 소식 같은 박스기사를 빼면, 9건에 불과한 ‘기사들’은 사실상 양념 노릇밖에 안된다. ‘기명의 부담’으로부터 탈출한 기사들은 더욱 노골적인 찬양 일색으로 치닫는다. 그쯤되면 이제 인간의 손때는커녕, 입김조차 묻지 않은 별천지들이 지면 곳곳에 등장하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투어월드’다.  


한국경제신문 1월 18일자 ‘기획특집 금융상품 뉴트렌드’ 섹션도 마찬가지다.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는 ‘있는 분’들의 근심을 기사 앞머리로 전하며 ‘저금리 시대의 쥐꼬리 이자’를 탓하는 이 기사는 여러 은행의 금융상품들을 전방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별다른 것은 없다. 주가와 환율의 변화에 따라 연동되는 시장연동예금 상품과 이미 선풍적 인기를 끈 해외투자펀드, 보험 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1면을 넘기니 아니나 다를까,  국민, 우리, 조흥, 외환 등 국내 모든 은행들의 ‘신상품 소개’에 두면 모두를 할애했다.

기사편집도 천편일률적이다. 미모의 여직원이 등장해 ‘뽀사시’한 미소를 지으며 상품을 소개하거나, 밝은 표정의 대표이사가 둥그런 원에 등장해 “믿어보라”며 자신감을 표시하는 ‘신파조’ 편집이 주를 이뤘다. 별로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도 않는다. 이 기사에도 기자의 바이라인은 없다. 지면 곳곳에 금융회사들의 광고가 실려 있음은 물론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허접한’ 광고섹션을 꾸미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경제신문에서 내는 ‘스폰서섹션’이 그렇다. 1월 21일자 스폰서섹션은 ‘우수경영혁신기업-베스트 CEO리뷰’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지면을 들여다보면 스포츠신문에서나 꾸밀 법한 ‘광고전단지’와 다름이 없다.

이 섹션은 건설, IT, 통신, 홍보대행사, 건강보조기구 등 광고를 줄 법한 업계의 CEO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실었다. 하지만, 기사내용은 근거가 희박한 자기자랑이나 제품소개들이 전부다. ‘기적의 물 공급하는 건강전도사’ ‘창의력 무장, 1등 향해 질주’ ‘온&오프에서 상한가, 기업홍보의 메카’ 등, 그렇고 그런 ‘전단지 제목’들로 지면이 메워졌다. 이 기사들을 읽노라면, 지면 우측이나 하단에 실린 ‘진짜 광고’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런 기사들과 진짜 광고를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면에 그어진 ‘굵은 실선’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신문이 발행한 ‘지역경제시대’라는 섹션은 더욱 심하다. 전국 각 광역시·도의 단체장 인터뷰를 중심으로 지역의 발전상을 소개한 이 섹션은 사실상 ‘땅 투기 전단지’에 불과하다. 자치단체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나 떠있을 법한 영양가 없는 내용의 ‘지역소개’로 8면을 채우더니 곳곳에 자치단체의 ‘투자요청’ 광고를 실었다. ‘현대가 조성한 서산 땅, 최상의 투자가치를 보장합니다’ ‘2005년은 인천 투자의 해, BUY INCHEON’ 등의 광고들이 그렇다.

이쯤 되면 “월 평균 순이익 1천만 원을 자신한다”는 프렌차이즈 업체 대표 인터뷰 정도는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이같은 경제신문의 광고성 기사 게재 행태는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 기사에 소개된 기업체들이 상당한 금액의 광고를 해당 경제신문에 집행한다는 것도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경제신문들은 ‘얼어붙은 광고시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쓰고 있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예 ‘PR란’이라는 표제마저 없애고 광고성 기사를 남발하는 이들 신문의 행태는 ‘관행’의 도를 넘어섰다.

한 기업체의 홍보담당 간부는 최근 언론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편집국 부서마다 할당이 내려오니까 기자들도 ‘광고특집’이라고 얘기한다. 기자들조차 기사로 생각하지 않는 기사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독자들에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골프, 웰빙, 자동차 등 시기별로 돈 되는 업종을 선택하고, 대개 2∼3일, 길어야 1주일의 시간을 두고 만드는 섹션에 어떻게 심층적인 기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꼬집기까지 했다.
 
심지어 기업체측은 이런 광고성 섹션을 두고 ‘기사가 아닌, 사보’라고까지 비아냥거리고 있는 마당이다. 그래서 이들 신문의 이런 ‘제 목 조르기’는 불쾌하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독자들도 이런 ‘모독’을 감수해가며 이들 신문을 구독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아마도 이들이 이런 과감한 행태를 계속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독자들을 바보로 알거나, 그들 자신이 바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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