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소비가 집결되는 장소인 현대도시.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뒤엉킨 인구 1천만의 서울은 현대 인류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욕망의 집결지’이다.

거대도시 서울의 시각 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북한산과 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들뿐만 아니라 가로계획과 빌딩 숲과 같은 인공적인 구조물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과밀한 교통량과 빡빡한 건축물에 의해 꽉 짜여진 답답한 도시 서울.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보다 풍부한 문화예술적 시각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공공미술 ‘환경조형물’이냐 ‘환경공해물’이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크게 눈 여겨 보지 못하는 ‘공공미술’ 작품들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이라는 것은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또는 집안 거실에서 만나는 그림이나 조각이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전문적인 미술문화 공간 이외에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인공적인 시각장치물을 포괄한다.

공공미술은 넓은 의미로 보면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공적인 시각 환경 전체를 말할 수 있다. 공공적인 장소에 예술성을 목표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가리키는 것. 공공미술은 거리와 건축물 등과 같이 주로 실용적 기능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인공조형물과 구분된다.

공공미술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주로 공공장소에 세워진 미술작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점점 공공성을 가진 미술이라는 말로 그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서구에서는 1968년 전후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법으로 정해서 큰 건물을 지으면 집 크기에 비례해서 조각이나 그림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도록 해왔다. 물론 마구잡이로 세워둔 것들이 많아서 ‘환경조형물’이 아니라 ‘환경공해물’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지만 좋은 작품들도 꽤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주로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영웅적인 인물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만들어서 공공장소에 배치하는 대대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었다. 독서하는 소녀 같은 조각상들이 모든 학교에 배치된 것도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역사 속의 수많은 미술작품들이 공공미술 개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라시대의 석굴암과 불국사의 석탑을 생각해보자. 아니면 경주 남산이나 운주사 천불천탑은 어떨까. 하나같이 당대의 세계관을 총집결한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작품들이 아닌가.

공공미술은 그 어떤 미술작품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인 성향’이 강하다. 한 시대의 공공적 미의식을 대변하는 조형물을 거리나 광장에 배치함으로써 시각예술작품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권력자들이나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기도 한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화문 네거리를 지키고 서있는 이순신 동상은 권위주의 군부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시각장치물이라는 주장에 따라 철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은 또 어떠한가.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거의 모든 학교에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 또한 반공이데올로기에 짓눌렸던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게 한다.

광화문 네거리를 걷다보면

그러나 모든 공공미술품이 지배자들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적 장치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시각을 좁혀서 서울 광화문 네거리로 시선을 옮겨보자. 광화문 네거리를 걷다보면 서대문 쪽 흥국생명 빌딩 앞에 우뚝 솟은 거대한 입체조형 작품을 볼 수 있다.

가만히 보면 천천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제목도 ‘망치질 하는 사람’이다. 조나단 보로프스키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러러 볼 수 있도록 만든 걸작이다. 건물 안에는 일주아트하우스라는 갤러리도 있고, 수천 개의 작은 그림을 이어붙인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또 위치에 따라 형상이 보이거나 사라지는 홀로그래픽 아트도 있다. 건물 자체를 공공미술로 꾸며놓은 좋은 사례이다.

의외의 장소에서 공공미술을 재발견할 수도 있다. 광화문 바로 앞에 있는 ‘해태상’이 대표적이다. 옛날 유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시각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자. 화산(火山)이라고 생각했던 관악산의 불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불을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상 해태를 세워둔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세계관을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풍수지리적 세계관, 자연관에 따라 석조조각을 세워둔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다. 따지고 보면 옛날의 미술들은 권력이나 종교의 목적에 의해서 공공의 장소에서 공동체가 합의하는 또는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담는 공공미술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보문고 앞에 있는 ‘고종황제칭경기념비각’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고종임금이 황제로 즉위한 것을 기념하는 비각이다. 거기에는 서구의 미술이 우리사회에 주입되기 이전의 조형미와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호선 종각역 부근의 종로타워는 건물 자체도 매우 인상적인 랜트마크(상징물) 기능을 하고 있는데, 그곳의 공공미술품들도 아주 세련된 것들이다. 건물 앞마당에는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여러 그루 서있고 그 밑에 돌로 만든 동그란 원기둥들이 여러 개 놓여있다. 원기둥이라는 아주 심플한 형상들을 벤치기능과 결합해서 사람들이 쉬어가는 자리로 만든 홍승남 작가의 작품이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높이 우뚝 솟아서 광장 한 가운데서 호령하는 지배자의 모습뿐만이 아니다.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편히 쉬게 하는 ‘낮은 공공미술’도 있다. 1층 로비에 있는 황인기 작가의 풍경화. 가까이서 보면 낱개의 나사못이지만, 뒤로 물러나서 보면 전통 수묵 산수 풍경화로 보인다.

▲ 최정화의 ' 세기의 선물'. 문화재의 전통적 요소를 조합하여 새로운 시각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건물 뒤편에는 최정화 작가의 탑도 있다. 여러 가지 탑의 모양을 짬뽕해서 만든 조형물인데, 전통적인 조형양식을 마구 뒤섞어서 새로운 미술로 만드는 포스트모던한 키치(Kitsch) 미술의 대표작이다. 옛것을 오늘날의 것으로 새롭게 읽어내려는 예술가들의 진지한 시각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계급계층 간 상징투쟁의 장 ‘공공미술’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계급계층의 감성에 따라 좋아하는 그림이 다를 것이다. 이런 점을 헤아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예술의 장을 ‘계급계층 간의 상징투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보았다.

거실에 거는 그림이야 아직은 돈도 없고 먹고 살기 바쁘니 어쩔 수 없다손 치자. 그렇다면 거리에서 만나는 공공미술이라도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공미술 작품이 이 시대의 의미있는 예술적 장치로 발전하려면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광화문 우체국 옆에는 고 전국광 작가의 추상작품이 있다. 쇠 파이프를 격자무늬로 얽어놓은 전형적인 추상작품이다. 그 어떠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형상미술이 아니다. 그런데도 80년대 군사정권의 ‘레드 컴플렉스’는 이 작품의 색깔을 빨간 색에서 초록색으로 바꾸도록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덕분에 빨간색에 관한 금기가 많이 깨졌을 즈음 작가의 유족이 그 작품의 원래 색깔은 빨간색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공공미술은 정권의 통제 대상이었던 것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공권력의 통제는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교보문고 옆 촛불집회가 열리던 자리에는 바닥에 무언가 흔적이 남아있다. 촛불집회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놓여있던 자리다. 당국에 의해 철거된 작품이 있는 이곳은 온 국민이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집회 장소였으며, 이 땅의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작은 마음들이 모였던 장소였다.

그 장소의 역사성과 현장성을 기록하기 위해 세운 기념 조형물이 현행법상 불법시설물이라는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철거당했다. 이후 어떠한 후속 대책도 없이 그냥 없었던 일로 잊혀져 간대서야, 어디 시대정신을 안고 사는 문화적 삶의 태도이겠는가. 박정희 정권이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심장부 광화문 네거리를 호령하고 있을 때, 효순이 미선이를 살리자는 민초들의 작은 촛불들을 기억하고자 했던 기념 조형물은 가차 없이 제거된 후 잊혀져 가고 있다.



이 일에 빗대어 단언컨대 우리는 아직도 대다수가 동의하는 시각적 장치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의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순신과 효순이 미선이를 상징 투쟁의 장으로 대비하여 서로 맞세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세력이 어떤 생각으로 특정 이미지를 공공장소에 세워두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심대한 감성 영역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이 땅, 이 시대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는 적극적인 관람객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공공의 장소에 서 있을 만한 가치있는 작품들도 늘어날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면서 다시 한번 이순신과 효순이 미선이의 역사성과 당대성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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