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절대적’ 개념이다. 그렇게 배웠고, 믿어 왔다. 해서 절망스럽다. 언어가 의식을 배반하는 까닭이다. 배반당한 사람들에게 현실은 요지경이다.
 
요지경 세상에선 사용 주체에 따라 언어의 진실이 뒤바뀐다. ‘평화수호’란 이름으로 ‘침략’하고, ‘부숴’ 놓고 ‘재건’한다. 평화, 그 절대적 개념이 상대화된다. 부시 미 행정부가 그랬고, 한국 노무현 정부가 또 그랬다. 
 
언어를 맘대로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분명 ‘그때그때 다르다’.
 
12일에서 14일 사이, 미국과 한국에서 평화와 이라크 전쟁에 관한 서로 다른 언어들이 들려왔다. 하나둘 거짓이 벗겨지는 미국과, 미국의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려는 한국, 그 이질감의 간극을 정리했다. 정리 끝에 재확인되는 당연한 사실 하나 - 거짓으로 무장한 정치언어는 국경을 초월해 연대한다.    
 
 
한국, “이라크 주둔 끝까지!” 외치며 ‘평화선언’
 
1. “날짜를 예측하긴 어렵다.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간 목적이 이라크의 평화와 질서, 안정, 미국과의 협력이므로, 미국 또는 함께 참여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이 참여하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특별히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끝까지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1월 13일 연두기자회견에서 파병 기간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
 
>> “이라크 평화와 질서를 위해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점령군의 일원으로?
 
2. “북핵문제는 관련국들의 상호 정치적 체제 존중과 관심사항의 고려를 통해 평화적이며 외교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13일 ‘2005 서울 평화선언’에서,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개원기념 국제심포지움 참가자 일동)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천명합니다.” (13일 국제심포지움 환영사에서,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
 
>> 한반도 긴장은 평화적·외교적 해결, 이라크는 군대로 해결?
 
미국, 진실은 밝혀지고 부시는 변명하고 
 
1. “미군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저지른 수감자 고문과 가혹행위로 인권보호 장치가 현저히 약화됐다” “미군의 포로 가혹행위에 대해 미 정부가 특별검사 위촉해 조사해야 한다.” (13일 발간된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2005년 연례보고서)
 
“미국 정부는 국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다른 나라에 정의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휴먼 라이츠 워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
 
“한 수사관으로부터 수감자들의 샤워장에 들어가 그들의 성기를 조롱하면서 웃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두 명의 정보 관계자들이 그레이너 상병 등 두 명의 간수에게 수감자들을 거칠게 다루도록 지시하는 것을 들었다.” (14일 미 텍사스주 포트 우드 군사법정에서, 제372헌병중대 퇴역 사병 메건 앰벌)
 
>> 후세인 독재로부터 이라크 민중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일으킨 전쟁의 결과 = 세계 인권보호 장치의 현저한 약화.
 
2.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한 이라크 전쟁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증거 확보와 상관  없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 (…)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 세계는 더 안전해졌다.” (이라크 침공 명분인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증거를 찾기 위해 미국이 2003년 5월부터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전문가 1700여 명을 투입해 벌인 조사활동을 성과 없이 종료한 데 대해, 13일 ABC방송과의 회견에서, 부시 미 대통령)
 
>> 밝혀지는 진실과 부시 미 대통령의 변명, 여기에 오버랩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 마디, “미국에 끝까지 협력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