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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위기,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의 중요성
  • 임영일 (경남대 사회과학부 교수)
  • 승인 2005.01.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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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일 경남대 사회과학부 교수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2004년 9월 각급 조직 간부 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의 거의 2/3가 민주노총의 현 상태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나왔으나, 상대적으로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고, 민주노총 조직원들이 스스로가 위기 상황에 있다는 심각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노동운동이 전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 있는 가운데에서도 민주노총은 상대적으로 꾸준히 조직력을 강화하고 투쟁력을 유지해 왔었던 데에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민주노총이 주력으로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약진으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있어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결과 나타난 민주노총의 위기의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우선, 이 위기의식은 최근 우리 노동운동의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재연되고 있는 경제위기나 산업공동화 문제 등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심각한 사회여론적,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대기업 이기주의, 귀족 노동운동, 심지어 ‘왕자병’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주력조직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심각한 여론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소극적 측면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측면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즉, 민주노총의 위기의식은 민주노총의 간부들이 자기 조직원의 단기적인 경제적, 조합주의적 이익 옹호보다는 더 넓고 중장기적인 사회정치적 목표들을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설문에 응답한 민주노총 간부들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 능력의 부족,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의 부재, 노동운동의 장기적 전망과 방향의 부재, 노동자의식의 약화로 인한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 약화 등을 위기의 원인이자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번 설문조사 이전에 이미 많은 노조간부들이나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은 그런 고민의 연장 위에서 이미 2000년에 ‘노동운동발전 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노총의 중장기적 발전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한 바 있었다. 문제는 고민은 오래되고 문제의식도 일찍이 있었으나 이것이 긴 호흡으로 앞날을 준비하는 전략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민주노총의 현재의 위기의식은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위기에 대한 대응의 부재가 낳은 지연된 위기의식이라고 본다. 위기에 대한 대응책도 지금 서둘러 찾아야만 할 그 무엇은 아니다. 대응책 역시 이미 대다수의 노조 간부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제기된 문제는 이미 그 답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와 관련 2000년 당시 작업에 참여한 바 있었던 필자로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일을 상기해보려 한다. 당시 필자는 전략위원회의 공식 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본안과는 직접 상관없는 세 가지 문제에 대하여 별도제안서를 제출했다.

민주노총 산하에 시급히 정책연구원과 교육원을 개설할 것, 그리고 노조 장학기금을 조성할 것이 그것이었다. 정책연구원은 반드시 독립기구(별도 법인)로 하여, 노조 집행부의 교체 등에 영향 받지 않고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을 준비해 나가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원은 조합원 교육기관이 아니라 체계적인 노동교육을 위한 교과목과 교과과정, 교재, 강의기법의 개발과 강사 양성을 목적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장학기금은 노동문제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 이상의 전문 연구자 지원을 위한 장기적 장학사업 기금을 생각한 것이었다.

이 제안은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말았지만, 실제로 민주노총은 이후 6개월 과정의 노동자학교를 개설했던 바도 있고 정책연구원도 최근 개원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필자의 생각과는 크게 달랐다.

나는 민주노총의 지금의 위기의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희석되거나 잠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나아가 우리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연 소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면의 현안과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는 노동운동이 아니고서는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금 고통스런 장정의 채비를 갖추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임영일 (경남대 사회과학부 교수)  limyil@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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