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을 며칠 남겨 두지 않은 지난 27일 또 한 명의 비정규직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아침 마산 한진중공업 도장공장 계단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고 김춘봉씨. 그의 곁에 놓여 있던 장문의 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렇게 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그렇게 해야만 나 같은 사람도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안타깝게도 우리는 2004년의 시작과 끝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과 함께 해야 했다. 올 2월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고 박일수씨가 공장 안에서 분신자살했다.
 
놀랍게도 그가 남긴 유서 역시 김씨의 그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올해만해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벌써 2명이나 ‘비정규직은 인간이 아니었다’고 한탄하며 죽어갔다. 어디 그 뿐인가. 이보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고 이용석씨가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치면서 비정규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역시 분신자살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비정규직 존재 알려

임금노동자들의 55.9%인 816만명이 비정규직노동자인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노동조건에 스스로 항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갑작스럽거나 폭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들의 죽음 이전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하며 개선을 요구해 왔다.

지난 2000년 10월 한국통신 민영화와 함께 계약직 7천명이 정리해고 되자 이에 반발하며 결성된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517일간 파업을 지속했다. 이미 계약해지 상태에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늘 ‘극한의 투쟁’ 뿐이었다. 2001년 3월 목동전화국을 기습적으로 점거하는가 하면 국회 본회의장에 뛰어들어가 “한국통신 계약직 문제 해결하라”며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대 공기업에 맞서 세상의 '관심'을 끌면서 버텨가는 것뿐이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그렇게 517일을 보내면서 이 사회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처절한 투쟁을 해 나갔지만 결국은 한국통신을 떠나 도급회사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투쟁이 진행 중이던 2000년에는 많은 비정규직노조들이 봇물처럼 생겨났다. 한통계약직보다 앞서 99년 8월에는 전국여성노조가 지역과 직종을 뛰어넘은 중소·영세·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를 기치로 설립됐으며 그해 12월에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들의 최초 노조인 재능교육교사노조가 설립됐다.
 
2000~2001년 사이에는 방송사 파견직 노동자들로 조직된 방송사비정규직노조, 간접고용 사내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캐리어사내하청노조, 홍익회 용역노동자들로 조직된 홍익매점노조, 시설관리 노동자들로 조직된 전국시설관리노조 등이 차례로 생겨났다. 또한 이랜드노조는 당시까지만 해도 정규직만 가입돼 있었지만 물류창고의 계약직 아르바이트와 도급업체 직원들까지 적극적으로 조직해 이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265일간 파업을 하기도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공장 사내하청 등 영역 확대

2002년부터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공부문과 대공장까지 훨씬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대표적으로 노동부 직업상담원들은 2002년 직업상담원노조를 결성해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7일간 파업을 했으며 6개 각 지방노동청은 일용직 직업상담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생겨난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는 직업상담원노조와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차별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도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민간부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정부는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겠다”며 대책 마련을 공언했고 이를 계기로 지난 5월에는 상시위탁집배원, 학교 영양사·사서 등 4,600여명을 공무원으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공공부분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책은 기존 노사합의 사항을 나열한 것에 그칠 뿐 오히려 비정규 ‘처우개선’이라는 뭉뚱그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산관리공사 비정규직들이 해마다 반복되는 계약해지 위협에 반발하며 노조를 결성했다. 또한 새마을호 여승무원 31명은 철도청의 일방적 계약해지에 맞서 철도노조와 함께 약 한달 간의 항의농성 끝에 전원 재고용 약속을 받기도 했다.

노동부, 현대차 전 협력업체 '불법파견' 판정

공공부문과 더불어 주목해 볼 사안은 대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다. 이미 INP나 한라중공업 등에서 사내하청노조가 만들어진 예가 있기는 하지만 도급계약 해지 등으로 노조가 와해되면서 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가 노조 설립과 동시에 불법파견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사내하청노동자 4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핵심 임원이 구속되는 등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노조 간부들은 고스란히 해고되면서 사실상의 대중적 노조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월차휴가를 내려던 사내하청노동자가 관리자로부터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테러’수준의 위협을 당한 것을 계기로 노조 설립이 촉발됐으며 뒤이어 울산공장에서도 ‘사내하청노조 인간선언’이라는 선언문이 배포되면서 울산, 아산 공장 모두에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다.

이같은 대공장 제조업 사내하청들은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 예가 지난해 결성된 금호타이어비정규직노조. 지난해 SK가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던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은 4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불법파견노동자들에 대한 SK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았다.
 
금호타이어노조는 이 회사 사내하청노동자들 역시 형식상의 도급관계일 뿐 금호타이어가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직접 노무관리하는 불법파견이라고 확신하고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동시에 비정규직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비정규직 주체를 발굴하는 작업까지 했다. 결국 이번 정규직노조의 임단협 교섭을 통해 불법파견노동자 282명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며 나머지 직접라인의 사내하청도 일단은 모두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금호타이어의 선례는 이후 대공장 사내하청들에 차례로 번져갔다. 금속연맹, 현대차비정규직노조, 현대차노조 등은 현대차의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해 이미 지난 15일 ‘전업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은 현대차 노사뿐 아니라 파견법 전업종 확대를 포함하고 있는 정부의 비정규직입법 추진과 더불어 향후 노사관계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현대차뿐 아니라 금속노조가 진정했던 경주공단의 현대차 부품업체들 역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며, 하이닉스- 매그나칩 공장의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노동부 조사가 진행중이다.




국회 타워크레인 농성, 비정규직 절박한 현실 반영

비정규직노조들의 저항은 이처럼 정부가 기간제 고용기간과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더욱 확산됐다.

지난달 26일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4명이 '감히' 국회 안에 있는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단행했다. 정부 비정규 입법안 국회 환경노동위 상정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비정규직을 확산할 것이 뻔한 정부안을 목숨걸고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지난 9월에도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입법예고 했을 때도 비정규직노동자 대표자 10여명은 열린우리당 의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다시 김춘봉씨의 죽음으로 돌아가자. 이미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들의 주목받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시작으로 타워크레인 고공농성까지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온몸으로 알려왔고 사회의 각성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개선된 것은 없고 노동자들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유서는 말투나 글씨체만 다를 뿐 내용도 같다. ‘비정규노동운동’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5년 이상 지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50m 높이 타워크레인의 고공농성만큼 아찔한 현실을 말하고 있는데, 절망 속에 목숨을 잃는 비정규직의 현실은 언제까지 두고 보고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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