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 하락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분석이 분주하다. 언제나 모범적인 정답은 있다.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상승)을 방지하고 완만한 하락(상승)을 이끈다는 게 그것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데 따른 장점은 주로 한국은행이 역설해 왔다. 수입 가격이 떨어져 물가 상승 압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한 가지 있다. 기업들이 환율 하락으로 수입 가격이 떨어진 정도만큼을 가격을 내린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기업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혹자는 ‘반기업 정서’ 운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997년부터 98년 12월까지 원화 환율은 31.6%에 상승했다. 그만큼 수입 원자재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이 기간 중에는 임금이 떨어지거나 제 자리에 머물렀다. 환율 상승과 높은 금리 이외에는 기업들로서는 가격을 올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엘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비누의 경우 이 기간 중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증가율은 10.9%였지만, 실제 비눗값은 97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62.4%가 올랐다. 사탕 역시 8.7%만이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증가율이었지만, 소비자들은 이보다 39.6%포인트나 높은 48.3% 오른 값에 사탕을 사먹어야 했다. 이런 격차는 페인트가 38%포인트, 아이스크림 23.7%포인트, 설탕 22.3%포인트, 소금 21.9%포인트, 밀가루 19.2%포인트, 두부 17.6%포인트, 빵·과자 8.5%포인트 등이나 됐다.

환율 상승을 틈타 지나치게 가격을 끌어올려 이윤폭만 늘린 것이다. 이런 일이 거꾸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환율 하락을 틈타 가격을 지나치게 조금 끌어내려 이윤폭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약간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상장·등록 법인 1,560(제조업 1,072)곳을 대상으로 2004년 3분기 기업경영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의 표현을 빌리면, “수익성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매출원가 상승 등으로” 매출액 경상이익률(경상이익/매출액)이 1분기 12.4%, 2분기 10.2%에서 3분기 9.9%로 낮아졌다. 제조업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이 비율은 각각 13.4%, 12.1%. 10.4%였다. 실제로, 매출액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은 같은 기간 동안 상장등록법인의 경우 10.9%, 10.2%, 9.4%로, 제조업의 경우 11.7%, 11.6%, 9.4%로 하락했다.

요약하면, 매출액은 크게 늘어났지만 원유값 급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가격에 완벽하게 떠넘기지 못해 이윤폭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동안 판매가격 인상 등을 통해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9%가 늘어 1년 전 4.3%가 줄었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시간대를 연장해보라. 그러면, ‘올 들어 수익성 악화’라는 호들갑에 숨어있는 함정도 발견할 수 있다. 올해 3분기 동안 매출액경상이익률(영업이익률)은 10.8%(10.1%)다. 1년 전 같은 기간의 7.9%(8.4%)는 물론, 2002년 5.8%(7.8%)와 견줘 월등히 높다.

최근 2년간 이렇게 급격하게 높아진 수익률 유지를 위해 기업들은 앞으로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4분기는 달러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원자재 가격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는 시발점이다. 그런데, 일부 신제품 라면은 이미 9월과 10월에 8~10% 올랐고, 일부 라면의 가격이 500~550원에서 550~600원으로 평균 8% 또 오른다고 한다. 500원짜리 새우깡도 700~1천원이 되려 한다. 업체들에서는 “밀가루와 포장지 등의 재료값 인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1월부터 나온 아이스크림들의 가격도 전년보다 8~10% 올랐다. 하지만, 환율 상승이 낳은 원자재 가격 하락 효과를 반영해 가격을 내리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거의 없다. 아마도, 기존 가격을 유지해도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오히려 불평을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적정한 매출액영업이익률과 매출액경상이익률이 어느 수준인가 하는 점이다. 자본주의 기업의 적정 이익률을 산정하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제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970년대 초부터 85년까지 평균 7.5%대였다. 86~89년은 7·8·9 노동자 대투쟁을 반영해 6%대로 하락했다. 하지만 90년부터 회복돼 95년 8.3%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96년 하락했으나 97년 다시 8%대로 회복됐다.

이런 역사적 수치들과 견줘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기록한 매출액영업이익률 10.1%는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그만큼 이익률을 희생해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는 셈이다. 누가 그걸 막고 있는 것일까. 주식시장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대치’ 때문이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 내년에 나서야 할 지점이 있다면, 달러 가치 하락 국면에서 정교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가격의 정치’를 펼치는 게 아닐까.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은 구체적이어야 하니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