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3일 당·정·청 수뇌부 만찬회동에서 국가보안법 등 4대입법 문제와 관련해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지자 열린우리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천천히 가라"는 주문을 놓고는 국보법을 대하는 성향과 당내 입장에 따라 해석이 엇갈렸다.
   
우선 대통령 발언의 전체 맥락이 '시기를 늦춰도 좋다'는 식으로 비쳐지자 연내 국보법 폐지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농성중인 강경파 의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농성의원단의 대변인격인 정봉주 의원은 24일 "신문에 알려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오보가 아니라면 개혁정책 드라이브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라서 확인해봐야 한다"며 "면담하고 나온 사람들이 동상이몽식 해석을 했는지, 그중 한마디 정도를 과대해석했는지, 침소봉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강경파 내부에선 오히려 노 대통령이 당지도부에 대한 '유감'을 에둘러 표시한 것이란 해석도 제기됐다.
   
장영달 의원은 "당이 제때 기능하지 못하면 대통령으로선 불가피하게 원칙론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지만 당지도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다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데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4인 대표회담을 지지하는 그룹 내에선 노 대통령이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의 협상노력에 이해를 표시하면서 힘을 실어준 것이란 해석에 비중을 두는 모습이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대통령이 잘 하셨다. 당이 스스로 정리를 못하니까 대통령이 나선 것"이라고 말하고, 국보법 폐지농성을 주도하는 475세대에 대해 "그 사람들을 보면 황당하고 난감하기까지 하다"며 "당이 잘 될 때 지도부를 믿다가 잘 안될 때 못 믿겠다고 하면 되느냐"고 말했다.
 
광주가 지역구인 김동철 의원은 성명을 내고 "국민 여론이 폐지 찬성으로 기울었을 때 처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의정활동의 초점을 '경제회생'에 맞출 것을 강조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국보법 문제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당지도부는 "원론적인 말씀이었다"는 해석을 되풀이하며 진화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천천히 가라'고 한 것은 처리의 시기가 아니라 내용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도부 내에선 특히 유시민 의원 등 한때 강경파 일부에서 주장했던 국보법 크로스보팅 제안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혀 주목된다.

한 관계자는 "여야간의 대화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느낌"이라며 "한나라당의 국보법 개정안과 대체입법안, 우리당의 폐지안을 놓고 전원위를 거쳐 크로스보팅을 하는 문제에 대해 양측간에 긍정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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