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에 대해 폐지와 존치라는 상반된 입장을 고수해온 여야는 23일 4인 대표회담을 열고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했지만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각자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여야는 이날 회담에서 희미하나마 합의 도출 가능성도 함께 확인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고 있던 한나라당의 개정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장을 알게 됐다"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청취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도 "남북관계 진전을 고려한 방향으로, 안보공백과 국민불안을 없애는 방향으로 큰 틀에서 공감했다"고 말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면서도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양당이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이날 회담에서 국가보안법의 명칭을 '국가안전보장법'으로 변경하고 현행 국보법 2조 정부참칭 부분을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단체'로 고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또 기존에 알려진 대로 국보법 10조 불고지죄 조항을 삭제하고 7조 찬양·고무 조항은 대폭 수정하자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제안 중 특히 주목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과, 국보법의 핵심조항이라고 볼 수 있는 반국가단체 조항 중 정부참칭을 개정하자는 대목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국보법 개정론에 가깝지만, 국보법을 폐지하고 반(反) 인권적 독소조항을 삭제한 새 안보법을 마련하자는 대체입법론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최근 소속 의원들로부터 여야간 합의도출을 위해서는 대체입법론 채택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는 건의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열린우리당이 형법보완당론에서 대체입법으로 한 걸음 양보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한나라당이 향후 얼마나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여야가 충분히 합의를 도출할 여지를 찾을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특히 국보법의 핵심조항인 반국가단체 조항에 대해서는 여야가 집중적인 논의를 시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 후 브리핑에서 김 원내대표가 "국보법 가운데 참칭은 과감하게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천 원내대표가 "제거돼야 한다"고 말허리를 자른 것도 반국가단체 조항이 합의 도출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이 반국가단체구성원 등의 목적수행죄(4조) 잠입·탈출(6조) 회합·통신(8조) 등에 대해 얼마나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지 여부도 향후 협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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