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세모가 가까워져도 우리 사회가 아직 숙제로 안고 있는 신용대란은 내연하고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약탈적 대출 러시가 서민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뒤, 우리 경제는 침체의 늪이 깊어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는 충북 청주의 한 모자가정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30여 가구의 모자가정이 입주해있는 이 마을에는 이혼의 아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빚의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남겨준 수천만원대의 카드빚과 이혼 후 위자료는커녕 생활비조차 없어 아무에게나 뿌려대는 카드를 사용하다가 추가로 생긴 수백만원대의 빚은 그들에게서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습니다.
 

그들은 빚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자식에게는 빚의 그림자가 미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절망적인 몸부림을 쳤지만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가는 빚의 크기와 강화되는 채권추심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자가정들의 처참한 상황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부 정책입안자도 부실경영을 저질렀던 카드사 대주주들도 제대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봉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신용대란 수습책 때문에 모자가정들은 계속 신용불량의 아픔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 신용대란의 주범가운데 하나인 LG카드가 채권단의 대폭적인 지원에도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또 하나의 주범인 정부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했던 채권단이 LG그룹의 추가부담을 요구하고 나서 일파만파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장하성 교수님이 나서서 심판을 자청했습니다. "정부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협박을 한다"며 "LG가 출자전환을 수용하면 오히려 주주 소송감"이라고 하시며 정부와 채권단을 꾸짖었습니다.

장 교수님.
 
LG카드를 채권단의 지원 하에 산업은행에게 인수시킨 것은 금융기관의 손실과 재정손실로 이어지는 관치금융의 극치였습니다. 또한 이 일련의 과정은 LG카드 대주주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대환대출을 통해 부실을 은폐하며 자신들의 주식을 높은 값에 처분하는 동안, 정부 관계자들은 금융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책임전가론을 유포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그래서 장 교수님이 “관료들의 정책실패를 국민과 투자자에게 떠넘기지 말라”며 “재벌의 황제경영 시대에나 가능한 증자 참여를 정부가 강요하고 있으며 만약 LG계열사가 LG카드를 살리기 위해 추가출자 한다면 이는 소송감”이라고 협박하는 것은 관료와 재벌의 공동책임을 부인하는 것으로 신용대란의 진실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카드부양책, 대환대출 장려 등으로 LG카드 부실화에 책임이 있고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시기 LG카드 부실에도 LG그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카드특감에서 LG카드가 2002년도 4/4분기 업무보고서에 유동성자산을 정당가액 9조원보다 3조5천억원이 많은 12조5천억원으로, 유동성자산비율은 정상비율 149.45%보다 57.38%p가 높은 206.83%로 과장보고했고, 2001년 4/4분기부터 2003년 3/4분기까지 적게는 4,567억원, 많게는 1조506억원의 연체채권액을 모두 정상채권으로 분류하는 등 LG카드가 금융감독위원회에 업무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이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LG카드의 진실은 정부, LG, 한나라당의 끝없는 커넥션 그 자체입니다. 끝없이 재발할 수밖에 없는 LG카드 논란은 저 가련한 모자가정 마을에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끝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약탈적 고금리에 눈이 어두워 수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급증하는 부실채권을 몰래 감춘 채, LG카드를 떠나기 전에 보유주식을 높은 가격에 처분하고 수조원대의 차익을 올린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LG카드의 대주주들에 대한 국민의 심판과 부당이익 환수조치가 놓여져 있어야만 합니다.

장 교수님.

게다가 LG카드의 불법적인 채권추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언론보도에 의하면 10만명당 36명이 자살하는 자살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사필귀정’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약탈적 고금리를 노린 돈장사와 이현령비현령식의 논리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재벌대주주들을 없애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 교수님은 누구의 편인지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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