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사 회장인 홍석현씨가 주미한국대사에 내정됐다. 미국 언론과 학계에 대한 외교 강화니 하는 얘기도 있지만, 다 웃기는 소리다. 현 정권이 그동안 ‘조중동’과 유지해온 ‘적대적 상호의존’ 전략을 조금 수정하는 것일 뿐이다. 이전처럼 노골적인 말싸움은 하지 않으면서 ‘조동’과는 적대적 상호의존을 유지하되, 중앙은 따로 떼어내 우호 세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게 내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둔 현 정권의 업그레이드 된 ‘정치공학’이다. 그런 원대한(?) 구상을 품고 있으니, 94년 중앙일보 사장 취임 이후 홍석현씨가 신문시장을 망가뜨린 장본인이자 악랄한 조세포탈범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신문고시’(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라는 게 있다. 신문시장의 공정한 판매·유통질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홍씨가 사장으로 있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사이의 신문전쟁 과정에서 96년 7월 지국장이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이듬해 제정됐다.

하지만, 이렇게 마련된 신문고시의 수명은 불과 2년을 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인 99년 1월 폐지됐다. 자율에 맡긴다는 알량한 취지에서였다. 이후 신문시장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망가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2001년 7월 정부는 신문고시를 부활시켰다. 이때, 이른바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 신문보도를 조금만 뒤적거려 봐도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 탄압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니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근거 없이 제한하는 위헌적 내용”이니 하는 발언을 쏟아냈고 ‘조중동’은 이를 열심히 지면에 옮겼다. 그 결과, 정부는 황당하고 엄청난 직무유기를 하고 만다. 신문 사업자단체인 한국신문협회에 불공정거래 단속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그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신문고시가 바뀐 게 2003년 5월이다. 하지만, 그 뒤 1년 동안에도 공정거래위가 신문시장에 개입한 행위라고는 2004년 5월7일 조선·중앙·동아일보 3개 신문 가락동 지국에 과징금 1,280만원을 부과한 게 전부였다. 올해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하고 언론·시민단체들의 신문시장 정상화 요구가 끊임없이 빗발친 뒤에야, 공정거래위는 직권조사다 신고포상금 제도 도입이다 하면서 뒷북을 쳤다.

이것이 홍씨가 만들어낸 한국 신문시장의 짤막한 역사다. 이 역사는 앞으로 어떻게 적힐까. 지난 10일 공정거래법(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재벌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현행 30%에서 15%로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온갖 예외조항 때문에 누더기 규제로 전락한 출자총액제한조항을 그나마 유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 조항에 대해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삼성그룹이 기를 쓰고 반대했다.

하지만, 거대 재벌만이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려 한 것만은 아니다. ‘조중동’이 한사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안에 신문판매시장 정상화를 앞당기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 무가지·경품을 제공할 경우 이를 신고하는 독자에 대해 신고금액의 상당배수를 지급하는 ‘신고포상금’ 제도가 그것이다.

이동통신시장에 대해서도 함께 도입된 이 제도는 △고가의 경품 제공 △거래상 지위 남용 △부당 내부거래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 △과도한 가격 할인 △거래 강제행위 등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를 신고하거나 제보할 경우, 정부가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명시하고 있는 현행 신문고시에 비춰보면, △2만8,800원이 넘는 경품이나 상품권을 제공하거나 △세 달 이상 무가지를 투입하는 행위를 신고하면 이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된다. 포상금 규모를 얼마로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신문시장 포상금 관련 예산이 33억원인 점에 비춰보면, 위반 금액의 10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제도는 시행령 마련 등 세부작업을 거쳐 내년 4월1일부터 시행된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신문시장의 현실에 비춰보면, 신고포상금 제도 도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어울릴 법하다. 그럼에도,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란 격언에 값하려면, 공정거래위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지금도 합법적으로 다른 신문의 발행부수에 해당하는 40~50만부의 무가지를 찍어낼 수 있도록 돼 있는 신문고시를 신고포상금 제도 시행 이전에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아마도, 공정거래위의 눈에는 주미대사로 앉아있는 홍씨가 어른거리지 않을까. 홍씨가 주관하는 내년 5월 세계신문협회 서울총회 개최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 애초 2억5,6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뻥튀기’ 된 것을 보면, 그리 무리한 추측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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