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탄압 중단하라", "부가세 전면 지급하라!"
 
찰나, 그 누구도 몸에 붙은 불을 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포근했던,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그날 택시노동자들은 건설교통부와 국세청에 ‘부가세 지급’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섰을 뿐, 한 택시노동자의 분신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내 동생 못 빼앗아 간다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10일, 조경식(44)씨가 분신 6개월 만에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말 정오교통분회를 통해 조씨가 인터뷰를 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몇 차례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조씨의 누나는 쉽게 그를 만나게 해 주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이 녀석은 아직도 자기 가족 걱정보다는 택시노동자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거야. 제 자식 끼니보다 파업하고 있는 동료들 안부를 먼저 묻는데, 우리 동생 빼앗아 간 사람들이 보내서 왔다는 데 내가 만나게 할 수 있겠어.”

6남매 중 첫째 누나인 조경란(60)씨는 처음 조씨가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 실려갔을 때도 중환자실 입구에서 노조간부들을 막았다. 그녀에게 조씨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일 뿐 아니라 노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7대 독자였다.

그런 그가 6개월째 병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200g이 채 되지 않는 깡통죽을 넘기는 일도,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말이다. 낙천적이고 넉살좋아 팔십이 된 노모 앞에서 재주부리는 일 역시 동생 몫이었는데 지금 노모는 조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이 녀석 상태를 알아봐, 당장 쓰러지시지. ‘경식이 보고 싶다’며 당신이 병원에 가시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걸 말리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한강성심병원 1709호. 6개월째 이 곳에 머물고 있는 그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화상병동인 그 곳에서 간호사들은 조씨의 상태가 제일 좋지 않다고 귀띔한다. 6개월 전 얼굴 주변화상이 전체 화상의 80%를 차지해 생사를 가늠할 수 없었던 그였다.

병실에서 조씨의 아내인 김윤자(42)씨가 나온다. 그 뒤로 얼핏 그가 보였다. 혈관과 근육이 다 드러난 얼굴, 두툼했던 그의 입술도, 짙었던 그의 눈썹도 보이지 않는다.

“누나가 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집 근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간 누나를 위해 조씨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김씨는 평상시에는 남편을 누나에게 맡기고 시어머니 간병을 해야 했다.

“친정에서야 몇 번이고 이혼하라고 했지요. 그럴 생각을 안했던 것도 아니지만 자식들이 옆에 있는데, 그리고 이 사람은요. 지금은 이렇지만 얼마나 가족들에게 잘 했는데…”라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김씨는 남편이 노조활동에 열심인 것이 못마땅했다고 했다. 2002년 정오교통이 3개월간 파업을 했을 때 그에게 가족은 뒷전인 듯 보였다. 혹여 김치라도 담가놓으면 회사 동료들에게 전해주기 일쑤였고 하루 12시간 택시 운전 후 잠을 자고 있다가도 노조 관계자들의 전화에 벌떡벌떡 깨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그의 전화기를 감춰놓기도 했단다.

조씨가 분신을 하던 그날 아침 아내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가끔씩 택시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가 사업주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날 남편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웃으면서 출근하던 그가 자신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돌아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떳떳한 택시노동자로 살고 싶다

중환자실에서 4개월, 일반실에서 2개월간을 보낸 조씨에게 두 아들 원형(16), 원산(14)이 있다. 두 형제가 아버지를 찾은 건 그동안 단 2번. 얼굴 피부조직이 모두 녹아버려 표정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 그렇게 자신들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아들의 목소리도, 얼굴조차도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황을 그들이 받아들이는 건 무리일 터다.

“이 사람 자기 모습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 앞도 안 보이고 손도 못 쓰니까. 조금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고만 생각하죠. 그러니 병원을 자주 찾지 않는 아들들만 탓하고, 수술이 모두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데….”

김씨의 말이 끝나기 전에 조씨의 누나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조그만 손가방에서 몇 개의 종이뭉치를 꺼낸다. 분신 직전 조씨가 남겼던 유서다.

그녀는 동생에게 “네가 원해서 인터뷰 하는 거지”라며 인터뷰 의사를 재차 확인하고 난 후 분신 당시 조씨가 썼던 유서를 큰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택시사업주 위주로 행정 정치를 하는 정부를 개탄하면서 나는 떳떳한 택시노동자로 살고 싶다” 유서의 첫머리를 읽어주자 6개월 만에 조씨가 말문을 연다.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누나가 자리를 비켜주자 기자의 눈에도 그의 모습이 온전히 들어왔다. 피부조직이 모두 녹아내려 눈은 감기질 않았고 귓바퀴 역시 찾아 볼 수 없었다. 까맣게 타버려 오그라든 손가락과 팔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울음을 토하다

그의 귀에 대고 물었다. 왜 분신이라는 방법을 택했느냐고.

그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택시운전사 생활을 10년 했어요. 택시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복지나 권익은 사업주에게 모두 돌아갔어요.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었고요.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 몸 하나 사라져 알릴 수 있다면야….”

말을 채 끝맺지 못한 그가 울음을 토했다.

다시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가족들한테 미안하고…, 정오교통 사업주가 …, 가족과 택시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으면….”

끝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분신 후 처음 입을 연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어리석었던 기자의 기대는 그의 울음 앞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 방남철 정오교통 분회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승무거부 투쟁을 벌이는 정오교통 조합원들에 대해 회사쪽이 업무방해를 이유로 지난 5월9일 중랑경찰서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김종우 사장을 구속하기 전까지는 조사를 받지 않겠다는 분회장을 결국 10일 오후 구속했다.

방남철 분회장과 구수영 민주택시연맹 위원장은 병원쪽으로부터 병원비 일체에 대해 가압류를 받은 상태다. 앞으로 10번도 더 넘게 힘든 수술이 남아 있어 병원비는 3억여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야 했던 조씨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환자실에 있을 당시 “차라리 죽여달라” 이야기했던, 차마 자신의 입으로 하지 못했던 미안함과 짐스러움.

그러나 다행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택해준 조씨가 살아있다. 그리고 조씨의 투병생활과 함께 정오교통 조합원들 역시 조씨가 사업장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파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후원계좌 : 281-014580-01-011(기업은행) 민주택시연맹(예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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