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재선됐다. 케리가 패배를 인정하자 국내 일부 언론들은 예의 ‘승복의 미학’을 들먹인다. 하지만 이런 낯 간지러운 단어를 입에 올리기보다, 부시의 재선을 보며 오히려 ‘음모론’이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더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지, 부시 정권이 200만명에게 아예 유권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게임의 룰 자체가 ‘조작’의 산물이라서만은 아니다.

개인적으론 미국 대통령선거의 향방을 가른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알카에다 풍(風)’이고, 다른 하나는 케리의 우세를 점친 조그비 여론조사 등이 불러온 ‘역(逆)밴드왜곤’(=언더도그) 효과이다. 빈 라덴의 테이프가 몰고 오고 케리가 이긴다는 각종 여론조사가 부추긴 ‘열세자 효과’는 부시를 지지하는 유권자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는 얘기다. 예상보다 늘어난 투표자 800만명의 대부분이 부시 지지자였다는 사정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 경제정책

샛길로 흐른 넋두리는 이런 정도로 하자. 본론은 부시의 대외 경제정책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 행진이 계속될 것인지 여부이다. 오는 11월10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는 그 가늠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연준이 밝혀온 태도를 보면, 인상 행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금리를 끌어올리는 배경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연준의 공식적인 의견을 종합하면, 미국 경제는 제 발로 서서 굴러갈 만큼 성장 궤도에 올라섰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론, 주택시장 거품을 잡는 데 금리 인상의 진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주택시장에 대한 연준의 공식적인 의견은, 그동안 주택가격 상승의 대부분은 주택 개량에 따른 질의 개선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곧 거품은 없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거품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속으로는 금리 인상을 통해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이뤄낸다는 게 연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강한 달러’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 대한 통화 절상 압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으로 자본이 유입됨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약세를 보이는 ‘역설’을 달성한다는 게 적어도 지금까지 나타난 부시 정권과 연준의 ‘공동 구상’이라고 봐야 한다.

연준과 부시 정권의 일치점

부시 정권과 연준의 ‘공동 구상’이라고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선거를 앞두고 지난 6월과 8월, 9월에 금리를 0.25%포인트씩 세 차례 올렸음에도, 부시 정권은 연준을 향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클린턴 정권과 달리, 부시 정권이 2001년 출범과 함께 연준을 향해 “통화정책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밝힌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부시 정권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집권기간 내내 ‘침묵을 통한 동의’를 나타낸 클린턴 정권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와 부시 정권의 관계도 그리 대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현재 연준이 추진하는 금리 인상은 월스트리트에 그리 나쁜 게 아니다. 아울러, 월스트리트의 근본적인 이해는 달러가 석유 결제통화로서 누리고 있는 독보적인 ‘페트로달러(오일달러)’ 지위에 의존한다. 따라서 지난 2000년 10월 석유거래에 유로만을 사용하는 결정을 내린 이라크를 침공한 것에 월스트리트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한국 경제, 수출 ‘올인’에서 내수부양으로

부시 정권과 연준의 이런 ‘공동 구상’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의 절상 압력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는 날로 높아지는 원화 가치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환율 방어를 포기할 것인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 하락 수준은 어디까지일까. 분명한 것은, 그동안 목격해 왔듯이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수출은 경기 회복의 원동력이 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본과 한국의 차이다. 일본의 경우, 10년 불황에서 탈출하는 궁극적인 원동력은 해외수요의 증가, 곧 수출의 증가였지만, 한국으로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율 하락을 일정한 수준에서 받아들이면서 전략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은행은 지난 11월7일 발표한 ‘최근의 수출호조 및 내수부진에 관한 분석’ 보고서에서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온 정책이 내수 침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최근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환영을 나타냈다. 달러 약세를 내수를 부양하는 기회로 삼자는 제안이다. 이런 제안은 고환율 유지의 부산물인 막대한 외환보유고의 일부가 한국투자공사 설립이 아닌 내수 부양의 재원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달러 약세가 내수 부양의 기회라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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