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합시다.”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도, 입안에 감도는 향긋한 냄새도 없지만 인터넷 카페에는 특이한 향기가 있다. 언제, 어느 때나 들러 마음 맞는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공유는 기본이다.

동문회, 취미활동 모임 등 3~4명만 모이면 카페를 개설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수백만에 이르는 카페들이 저마다 ‘씨줄과 날줄’을 이어 정보의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의 첫 관문을 표방하는 각 포털 사이트들은 카페를 운영하며 수백만 네티즌들의 손발을 엮고 있다. 대표적인 ‘다음 카페(cafe.daum.net)’에는 1천여 개가 넘는 ‘노동’ 관련 카페가 있다.

‘노동’ 관련 카페는 ‘노동조합’이 단연 숫적으로 압도적이다. 노조 카페들은 요즘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중심으로 11월 총파업 투쟁을 선전하고 있다.

민주노동자 모임 ‘동녘’(cafe.daum.net/minjunodongja)은 민주노총 공공연맹 산하 건강보험공단 직장노동조합원들의 모임으로, 지난 4월 개설해 200여명이 활발히 참가하고 있다. 대우차노조 교육위원회도 ‘대우차 새아침’(cafe.daum.net/dwno)을 지난 8월 13일 개설해 활동중이다.

검색 창에서 카페를 선택하고 ‘노동’을 쳐보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노동의 향기’가 넘치는 카페로 한발 더 들어가 보자.

‘단두대’(cafe.daum.net/dandoodae). 왠지 서늘함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하지만 섣부
른 판단은 금물이다. 카페에 들어가면 회원 312명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시, 음악, 문학 등 다양하고, 풍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북항쟁에 대한 기록도 볼 만하다. 카페 소개글은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고 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 속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왕관이~(중략) 한 시대의 빼어남을 지향하는 길을 가지 말고, 장중한 역사의 산맥 속에서 익어가는 숯이 되라.” 이 구절을 읽는 것만으로도 들어간 보람은 찾을 수 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cafe.daum.net/migrantworkers)는 노동 관련 카페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이 활동하고 곳 중 하나다. 현재 3,155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이 카페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자원 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자원 활동을 원활히 하고, 자원 활동가들 간의 친목, 정보 교환을 위한 장이다.

올 5월 15일에 개설한 ‘철의 기지’(cafe.daum.net/stoneagit)는 현 시기 올바른 노동자운동의 정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카페이다. 회원은 4명에 불과하지만 올라오는 자료들은 만만치 않다. ‘투쟁하는 민주 노동자’(cafe.daum.net/sdj9287)는 올 7월에 개설해, 98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파견법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workright21)은 올 9월 14일 개설했지만 27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파견법으로 인해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파견노동자들과의 상담을 통해 권리를 찾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장이다.

올 9월에 개설한 ‘노동자의 쉼터’(cafe.daum.net/screen1969)는 노동자의 권리를 알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장이다. 13명의 회원들이 각종 투쟁 현안과 총파업 및 비정규 관련 각종 자료들을 올리고 있다.

노동자 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카페도 있다. 여성노동자 글쓰기, 노동과 희망, 독서일기, 음악다방 등 다양한 코너가 구성되어 있다.

‘전국노동자문학캠프’(cafe.daum.net/nodongmoon)는 올 7월에 문을 열어 현재 81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제2회 전국노동자문학캠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든 곳으로 노동문학과 문화 관련 교류를 하고 있다.

‘남도 노동자문학회’(cafe.daum.net/nodongmunhak)는 올 8월 출범해 15명이 회원이 있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고, 현재 김해화 시인이 창작을 지도하고 있다. 회원들은 창작시를 올리고 품평를 서로 나눈다.

최근 이 카페에 올라온 시 한편 감상하며 쉬어보자.

용접봉 튀기며 살아 온지 25년
이 현장 저 현장 떠도는 숨가쁜 나날
한 칸 집이라도 장만 하리라던 꿈
불꽃에 사그라진 늙은 노동자 이마에 꿈틀대는
저 굵은 물살 좀 보아
(중략)
경상도니 전라도니
다를 수 없는 노동의 길
단숨으로 달려와
하나 되는 우리를 갈라 놓으려 한다면
쇠말뚝 쐐기를 박겠다는
황톳길 굽이굽이 휘돌아 치는
저 격랑 좀 보아

젖은 강변 나부끼는 저 깃발 좀 보아
(김양일 씨가 쓴 ‘형산강에서’의 일부분)


여성, 비정규,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노동에 천착하는 카페들도 많다.

‘고된 노동, 질긴 가난’(cafe.daum.net/toaction)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가난의 대물림에 맞서는 이들의 모임으로 올 4월 개설해 현재 7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 여성, 약 그리고 나’(cafe.daum.net/laboranddrug)는 지난 1월 개설 이래 6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볼거리, 읽을거리들이 넘쳐난다. 남성들이 들어가면 될까. 안될까.

비정규직철폐위원회(cafe.daum.net/antiBJG)는 지난 9월 11일 개설돼 3명의 회원밖에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헤쳐 나갈 방안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버마이주노동자회(cafe.daum.net/mmwc)는 올초 개설돼 현재 186명의 회원들이 왕성한 국내활동을 벌이고 있는 공간이다. ‘버마행동’이란 또다른 이름처럼 버마가 민주화되는 날까지 투쟁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cafe.naver.com/solidarity.cafe)은 최근 ‘눈에 띄는 카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 3월 개설해 113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노동비자 쟁취! 전면합법화 쟁취!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를 지지하는 모임이다.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싸이월드’의 클럽과 미니 홈피에서는 학생들의 노동 관련 학습모임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주노동자, 산재, 체불임금 등과 관련한 모임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임’ ‘김윤기 열사 장학회’

‘전국산업재해인’ ‘해외 한국기업 인권준수를 위한 시민모임’ ‘2004년 메이데이 같이하기!’ 등의 클럽이 있다.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공유하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카페’란 공간이다. ‘노동’ 관련 카페들은 올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 관련 카페는 다른 연예, 유행, 취미 카페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다음 카페’에서 100위권 안에 드는 카페들은 대부분 회원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 반면 노동 카페들은 수십 명이 모이는 것이 고작이다.

연예, 취미 등 상위권 카페들이 경박스러운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면 노동 카페는 ‘진지함’과 ‘엄숙함’이 묻어나 있다. 그래서일까. ‘개점휴업’한 카페가 많다. 이름이 괜찮다 싶으면 더욱 그렇다.

관심있는 ‘노동’ 관련 카페가 있다면 하나쯤 선택해 풍성한 날개를 달아주면 어떨까.
 
아참,  빠진 것 하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문제지만 세상 고민 다 진 듯한 심각함도 조금은 벗어 버리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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