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주요한 민생현안들이 외면되고 있는 요즘, 노동자의 힘으로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 질문에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인 노조가 정치활동에 나서고 이를 통해 노동자가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책의 저자가 20여년 동안 노동정책에 몸담아온 현직 지방노동청장이라는데 있다.

공덕수 대구지방노동청장이 쓴 『한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정치-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 이 책에서 저자는 국가의 경제발전논리와 법적·제도적 통제로 인해 한국에서의 노조정치활동이 크게 제약돼 왔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97년 12월 이후 선거운동과 정치자금 제공의 길이 노조에게도 열리고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며 이제는 노조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선진국의 사례와 우리의 정치현실을 분석해 한국의 노조정치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노동당원의 80%와 노동당 예산의 88%를 충당하는 등 노조가 정당의 기반이 되고 노동당도 의회에서 친노동자적 정책을 펴는 등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어왔던 영국 노동조합회의(TUC)와 노동당. 이들의 관계가 90년대에 들어 토니블레어가 당수를 맡으면서 국민의 정당을 목표로 TUC와 거리를 두려하고 있으며 TUC 역시 노동당과의 특권적 관계를 포기하고 다른 정당과도 정책적으로 연대할 것임을 표방하는 등 상호 결합관계가 해체되어 가고 있다고 이 책에서는 지적한다.

반면 건국초기부터 민주-공화 양당체제가 확고히 정착돼 제3당의 출현이 어려웠고 노조도 사회적 요구보다는 노동조건 향상에 더욱 주력해왔던 미국의 노동조합산업총연맹(AFL-CIO)는 민주당과 좀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전통적으로 무당파주의(Nonpartisanship)을 고수해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FL-CIO는 지난 92년 선거 당시, 상원에서 66.3%, 하원에서 66.8%, 주지사에서 80%나 되는 지지후보들을 당선시켰다며 미국식 노조독립형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저자는 제시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협소하며 소수정당에게 불리한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점, 기존정당의 독점이 강하고 계급적인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 등은 한국의 정치현실이 노조중심의 새로운 정당 출현을 힘들게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에서도 노조 독립형이 바람직하다고 전망한다. 결국 노조가 특정정당과 제휴로 인한 모험을 피하면서 사안별로 정당과 연대를 맺고, 정당들을 서로 경쟁시켜 노조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경진사에서 출판됐으며 가격은 만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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