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10월 날씨답지 않게 추웠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소속 비정규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갖고 있던 지난해 10월26일, 갑자기 “비켜요!”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타올랐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 목소리의 진원을 파악했을 때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자였던 고 이용석씨가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말을 생애 마지막으로 외치며 분신했고 5일 뒤 사망했다.
 
비정규직노동자가 그들의 차별적인 노동조건에 항거 해 분신한 것도 처음이지만, 그것도 생산직 등 제조업도 아닌 정부기관 사무직 노동자, 그것도 노동부 산하기관이었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이미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는 전 산업과 업종에 걸쳐, 기업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민간부문은 물론이고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야할 공공부문까지 이미 깊숙히 확산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 이용석씨의 죽음 직전에도 노동부 직업상담원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과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 준비가 큰 차질을 빚으면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도마 위에 올라 있었다. 거이게 이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의 문제가 소득 불평등과 인권 차별의 문제로 사회화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전반적인 실태조사 중이며 이 결과가 나와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늑장을 부리다 결국 지난 5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 이용석씨의 분신 후 1년, 그리고 정부 비정규직 대책발표 후 6개월,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실태를 살펴봤다.
 

 민간위탁 전환 등 정부방침 역행

지난 5월19일 노동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가 합동 발표 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상시위탁집배원, 학교 영양사ㆍ사서 등 4,600여명이 공무원으로 채용되고 환경미화원과 도로보수원 등 2만 7,000여명은 상용직으로 신분을 보장받게 돼 있다. 또한 학교 조리보조원과 정부부처 사무보조 등 6만 5,000여명은 연봉계약제로 운영되거나 보수가 인상되는 등 처우를 개선하기로 했다.
 
물론 발표 당시부터 정부 대책이 이미 해당 노조들이 단체협약으로 확보한 내용일 뿐 아니라 간접고용 확대 방지 등 비정규직의 확산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점은 ‘허술한’ 정부 대책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정읍시 환경미화원들이다. 정읍시청은 지자체 환경미화원을 상용직화 한다는 정부방침에 역행 해 환경미화업무를 민간위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민간위탁 업체로의 전적을 거부하는 환경미화원 9명을 지난 7월20일 최종적으로 해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행자부는 “정읍시는 노동자들이 수탁업체로의 고용승계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정부 대책과는 관계가 없다”며 “또한 민간위탁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 판단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해고 된 환경미화원들은 160일 넘도록 정읍시청 앞에서 천막농성 중에 있다. 정부가 상용직 전환 계획만 ‘달랑’ 발표해 방기하는 동안 일부 지자체에서는 민간위탁 전환과 이에 따른 정리해고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줄어들고는 있나

정부대책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740명 계약직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 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이 채용시험에서 떨어진 약 200명 정도는 해고가 예정돼 있다. 향후 3년간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을 모두 없앤다는 방침이라 일정정도의 고용 조정은 불가피 하다는 것이 공단 입장이다.

직업상담원노조는 노조 설립 후 정부와 교섭을 통해 57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1년 단위 계약제에서 57세까지 근로계약이 자동 계약 갱신을 약속 받았다. 이번 정부대책에는 이를 마치 정부가 차제에 마련한 것인 양 발표하고 예산회계, 지도점검 등의 업무는 공무원이 담당하고 직업상담원은 직업상담 업무에 전념토록 해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비스 개선은 아직 ‘협의 중’인 채 지난 9월 IMF 이후 6~7년 동안 일일취업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 직업상담원 33명을 일시에 정리해고해 직업상담원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는 정부 대책이 기본적으로 비정규직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 숫자만을 임의적으로 줄이는 데만 주력하고 있을 뿐 간접 고용 등 다른 형태의 확산이나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는 고려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단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기 위해 현재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호하기 보다는 민간위탁을 통한 아웃소싱과 구조조정은 먼저 진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의도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결과는 ‘아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올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니 지난 1년간 비정규직 증가는 공공부문이 주도 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김유선 소장이 발표 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4.8) 분석 결과에 따르면 광공업(40.0%)과 민간서비스업(72.9%)은 전년과 동일하고 농림어업건설업(77.6%)은 2.0% 감소한 데 비해, 공공서비스업(40.0%)은 오히려 2.4% 증가했다. 정부 부문인 공공행정및사회보장행정(23.1%)은 2.7%, 교육서비스업(50.1%)은 2.2%, 보건사회복지사업(39.6%)은 2.2% 증가했다.
 
이는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비정규직 증가는 공공부문이 주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별 대책도 너무 ‘허술’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 공공부문 대책 발표 이후 각 행자부, 교육부 등 각 부처별 후속 대책들이 마련되지 않거나 정부 대책에서 한 발짝도 구체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8월 정부대책의 후속 대책으로 ‘지방자치단체 소속 비정규 상근인력의 고용안정 및 주40시간 근무 시행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을 하는 ‘일시사역인부’에 대한 내용은 통째로 빠져 있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각 부서별 예산 범위 내에서 재량껏 고용하고 있는 일시사역 인부는 행자부 지침에 따라 300일 이상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근무하지만 3개월, 9개월 등 단기계약을 여러 번 반복갱신하고 있다. 이들은 상근인력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송파구의 경우 완전히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원녹지 상근인력과 일용직 임금의 차이는 1.8배에 이른다. 열악한 조건에서 차별을 받으며 일하고도 이들의 주5일 근무에 따른 임금보전 문제는 역시 논의되지도 않게 된 것이다.
 
교육부의 후속조치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 지난 6월 교육부는 정부 공공부문 대책에 따라 학교 영양사·사서의 공무원 정원을 늘리고 그 밖의 비정규직은 1년 단위 학교 회계계약직으로 전환해 공무원 초임수준(기능직 10등급 초임)의 연봉을 지급토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학교비정규직대책 시행계획(안)’을 발표하고 7월부터 일부 교육청에서는 개선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수 가입 돼 있는 전국여성노조는 “교육부 지침은 연봉제 계약이 일당제를 연봉제로 말만 바꾼 미봉책이다”는 주장이다. 실제 일하는 날에 일당을 곱한 총금액을 방학기간을 포함한 월 단위로 나눠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실험보조원은 월평균 64만원, 조리종사원은 56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저임금을 받으면서 임금지급 형태만 연봉제로 변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2단계 대책 발표, 도대체 언제 하나
 
이렇게 각 부처간의 세부 시행계획도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정부 대책 발표 당시 약속했던 2단계 대책은 나올 수 있을까? 정부는 당시 “이번 대책에서 제외된 철도청 등 정부부문 6만 5,788명과 공기업 및 산하기관 2만 9,671명에 대해서는 2단계로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며 “이번 대책을 참고해 정부기관은 9월말까지, 공기업ㆍ산하기관은 올해 말까지 자체적으로 대책을 수립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9월말까지 나온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2단계 대책 발표는 ‘없다’. 노동부 관계자는 “2단계 대책발표는 없다”며 “당시 대책에 포함되지 않는 직종에 대한 대책은 해당 부처별로 마련하기로 했지만 부처마다 비정규직 현황이 달라 당시처럼 일률적으로 발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부처별 대책이 마련 중에 있으나 기획예산처 심의 등의 작업을 아직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올 해 하반기는 규개위를 통과해 국회 상정이 예정돼 있는 정부 비정규직 입법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여당의 날선 대립이 예상된다. 그런데 정부가 고용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현실이 바로 정부 여당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반적 인식을 이미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 종로 한 복판에서 이용석씨의 몸이 불타 오른 지도 1년, 애석하게도 정부대책 이후 비정규직 고용은 더욱 불안해 졌고 비정규직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 고 이용석씨가 들으면 통탄할 일이지만 그가 화염 속에서 외쳤던 뜨거운 외침들이 차갑게 외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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