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국무총리는 무척이나 ‘애매한’ 자리이다. 선출되지 않은 ‘제한적 행정권력’의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다. 국무총리는 입법부와의 관계를 비롯한 정치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자기 목소리를 목청껏 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간 한국에서는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대독’하는 자리 정도로 여겨왔다.
 
청와대는 이해찬 총리를 지명하면서 ‘일하는 총리’ ‘개혁형 총리’라고 명명했다. 그러니까 국민들에게 그저 ‘대독총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대통령을 도와 개혁을 진두지휘할 적극적인 총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심을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해찬 총리가 이른바 ‘재야파’ 국회의원으로서 맹활약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회의원 보기를 뭐 같이 보는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해찬은 ‘무서운’ 의원으로 통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국정을 감시하는 데 그 치밀함과 날카로움이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세간에서는 이해찬 총리 정도라면 정말 일하는 총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이해찬 총리는 별 다른 파장 없이 인사청문회 등 입법부의 승인절차를 거쳐 ‘무사히’ 총리직을 맡을 수 있었다.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들이 수행한 16대 국회의원 의정활동평가에서 이해찬 총리의 성적이 ‘최하위권’이었다는 것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이해찬 총리에 대해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이해찬 총리가 ‘실세 총리’로 국정운영은 물론, 대야당 전략 설정 등에서 대통령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이후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로 부상하지 않겠느냐고.
 
이것은 호사가들이 유포한 그야말로 ‘설’일 것이다. 다음 대선 때까지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다사다난한 한국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누가 실세다라는 이야기가 의미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사가들의 이런 설이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이해찬 총리가 그간의 총리들과는 무언가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라는 데 상당수의 정치 관계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해찬 총리의 행보를 보면서 우려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해찬 총리는 얼마전 유럽 순방 중 한나라당을 역사에 반하는 세력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한 것을 비롯,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주류보수언론 등에 대해서도 더 이상 ‘정권흔들기’를 하면 안좋을 것이라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당분간 집권할 가능성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여당이라면 좀더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소견도 피력했다.
 
28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서는 한나라당에 대해 ‘차떼기 정당’이라는 무기를 다시 들고 나와 공격했다. 여야와 언론 등 정치관련 세력들에 대해 이렇게 강한 주장을 서슴없이 해대는 총리를 우리는 본 적이 없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강한 톤의 정치적 발언으로 정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국정의 안정적이고도 원활한 운영과 관리를 책임져야 할 총리가 할 일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이해찬 총리의 정치적 발언을 듣노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어찌 그리 ‘닮은꼴’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한나라당과 조선, 동아 등 주류보수언론이 변화하는 정치사회 환경에 조응하지 못하면서 세상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일종의 ‘상식’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꼭 집어’ 비판의 칼날을 정면에다 들이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확인사살’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해찬 총리의 갑작스러운 행보를 보면 묵묵히 국정을 챙기는 의미에서 일하는 총리가 아니라, 야당세력들과의 걸죽한 한판 싸움도 불사하는 ‘정치하는 총리’라는 의미에서 일하는 총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소 조용해지자 이해찬 총리가 들고 나선 것이라고나 할까.
 
그간의 총리들과는 다르게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탓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정쟁유발 차원이 아니라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민생관련 정책들을 둘러싼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보다 생산적인 차원에서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해찬 총리로부터 민생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을 계기로 한 야당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해찬 총리가 대독총리의 오명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하여 야당과 전투를 치루는 그림자 장군, 카케무샤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고 하면, 이 또한 호사가의 배부른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총리 지명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 장관 시절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추진해 현재 교육파행의 단초를 제공했으며, 정책을 추진하는 데 폭넓은 여론수렴과 동의에 입각하기보다 폐쇄적인 성향을 보여왔다는 평가에 주목하면서, 당·청 관계를 우선 고려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 어쩌면 이제서야 민주노동당의 의구심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해소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해찬 총리가 불필요한 정쟁에 휘말리기보다는 민생을 제대로 살피는 국정운영과 관리에 전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싸움닭’ 국정책임자는 노무현 대통령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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