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를 근거로 한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해 “관습법 등의 불문법은 성문법의 보충 조항으로서만 효력를 지니며, 헌재의 결정은 국민대표에 의한 국정수행을 핵심으로 하는 대의제 원리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8일 민변과 참여연대의 공동주최로 열린 ‘헌법재판소 이대로 좋은가-관습헌법에 대한 고찰’ 토론회에 참석한 재야 법조인들은 이같이 주장하며 “관습헌법의 사용은 헌법제정권자도 헌법개정권자도 아닌 헌재가 ‘관습헌법’의 미명하에 사실상 헌법제정권이나 헌법개정법을 행사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문법, 성문법 보충조항시 효력발휘"

임지봉 건국대 교수(헌법학)는 “관습헌법 위반을 이유로 한 헌법재판관 7인의 위헌 결정은 그 결정의 파괴력이나 중대성에 비춰 봤을 때 그에 상응하는 ‘명백하고 탄탄한’ 위헌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임 교수는 “(헌재가) 성문헌법 규정은 놓아둔 채 ‘관습헌법’이라는 불확정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으로 ‘안일한 도피’를 택했다”고 비판하며 “조선시대 경국대전의 문구까지 인용해가며 수백년간 서울이 수도였고 따라서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이 상당기간 동안 다수 국민들에 의해 지금껏 받아들여진 관습헌법임을 장황한 설명을 통해 강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부득불 관습헌법을 위헌의 근거로 드는 경우에도, 관습헌법은 성문헌법 조항의 의미를 해석하는 기준으로 추상적인 성문헌법 조항의 의미를 보충하면서 성문헌법 조항과 함께 위헌판단의 기준으로 사용되든가, 성문헌법의 특정조항에도 어긋나고 더불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관습헌법이나 헌법정신에도 배치되어 위헌이라는 식의 논리만이 가능하다”며 이번 판결에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 있음을 비판했다.

김갑배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도 “어느 나라에서도 성문법을 놔두고 불문법으로 위헌결정을 내린 경우는 없었다”며 “불문법은 ‘참고조항’이나 ‘예외조항’이 될 수 있을 뿐이지, 이를 보편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호주제’를 예로 들며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면 위헌이 되는 셈인데, 이는 앞뒤가 바뀐 논리”라며 “헌법에 보장된 남녀평등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에 호주제를 폐지하자는 논리가 맞다”고 지적했다.


“헌재 민주적 재구성 절실”

헌재의 권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라 지정한 추상적 잣대에 의해 무효화 될 수 있다는 것은 ‘헌재를 국회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서, 국민대표에 의한 국정수행을 핵심으로 하는 대의제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관습법을 이런 식으로 널리 인정하고 그 효력 역시 성문법과 동일하게 인정될 경우 관습법에 대한 해석권한을 독점한 헌재가 언제든지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할 위험이 있다”며 “결국 헌재의 이번 판결은 헌법질서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헌재의 이번 결정이 헌재재판관들의 전문성 부족에서 야기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경주 인하대 교수(헌법학)는 “헌재가 헌법정신에 충실히 이바지하여 진정한 헌법수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판관이 민주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헌재재판관의 전문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헌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치에의 개입을 적극 거부하고, 국민 다수의 기본권 옹호를 위해 사법적극주의를 발휘해야 할 것”이라며 “헌재 운영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를 위해 국회에 의한 통제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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