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병역 연가’가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
 
27일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 등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 5명이 드라마 <슬픈 연가>에 출연 예정인 인기탤런트 송승헌씨의 입대를 연기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병무청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 국면은 ‘전국민적’ 논쟁 분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병역비리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류 열풍이 확산되고 있고, 드라마가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사정을 들어보니 그가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가 일본에서 30억원 투자 받기로 했는데, 무산되면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것을 이유로 드라마 완성을 위해 2-3개월 정도 송씨의 입대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다.
 
“송씨는 병역 기피자이기 때문에 따끔한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국가 이익과 충돌했을 때 이 문제를 고민해달라. 어차피 입대를 할 것 아닌가. 이 문제는 송승헌씨 개인을 위한 구명 차원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일이다.”
 
우 의원의 행동이 알려지면서 전개되는 논쟁의 지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송승헌이 가 가져오는 국익은 극히 일시적이며 그것은 한낱 개인의 영화에 불과한 것뿐”이라거나 “지금 이 시각에도 칼잠을 자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60만 군인들에게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길 바란다”는 류의 ‘병역신성화’ 논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관습법’에 의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가수 유승준의 케이스를 떠올리면 실정법을 어긴 송승헌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 점에서 우상호 의원 등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우 의원 스스로도 “인터넷 등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나 하나만 맞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함께 서명한 동료의원들의 명단공개를 거부했다. 애초부터 우 의원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파장’을 예견한 듯 하다.   
 
우상호 의원의 이같은 발언은 언뜻 대단히 ‘용기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국방위에서나 다뤄야할 병역비리 문제에 대해 ‘문광위 소속’으로서 굳이 나서 ‘국익 수호’를 위해 뭇매를 감수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문제는 이같은 우 의원의 행위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데 있다. 우선 과연 송승헌의 입대연기를 무릅쓰고 강행한 이 드라마가 실제로 얼마나 ‘국익증진’에 도움이 되느냐부터 짚어보자.
 
여기에 대해선 변희재 <브레이크뉴스> 편집장이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변씨는 “안재욱이 중국에서 성공하고 배용준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한국에서 확고한 기반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라며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송승헌표 드라마가 국내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방영사측인 MBC조차 제작사가 송승헌의 출연을 강행한다면 방영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미시적 계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우 의원이 송씨의 구명에 나서게 된 배경에 송승헌씨 소속 기획사인 포이보스측의 ‘읍소’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한달 전부터 포이보스측의 로비가 진행돼왔다는 문광위원들의 증언도 줄을 잇고 있단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포이보스측의 집요한 로비가 아니라, 그들의 로비에 넘어간(?) 듯한 우상호 의원이다. 
 
이들 연예기획사들이 어떤 곳인가. 스타시스템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연예인의 몸값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수익을 최대한 늘리는 한편, 나머지 문화산업엔 턱없이 낮은 분배의 악순환만을 가져다준 장본인들이다. 한국영화의 대박행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한 영화 스태프들의 임금·노동 현실과 연예인 ‘노예계약’의 핵심에 이들 기획사들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음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겠지만, 과거 상당수의 연예인 병역비리 파문마다 이들이 연관됐음을 상기하면 이번 사건의 실체도 뻔하다. ‘송승헌 파문’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런 기획사들이 망치고 있는 한국 문화산업의 ‘앞날’을 위해 메스를 들어야 할 문광위 소속 의원이 외려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나섰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우 의원이 국회입성 전 3년간 영화제작사를 직접 운영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이 바닥의 ‘생리’를 모르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과연 그는 ‘알면서도’ 국익과 한류를 위해 기획사측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스타의 병역 기피’가 아니라 스타 한 명의 ‘거취 문제’에 따라 대형 드라마 한 편이 ‘엎어져버릴 위기’에 처한 한류열풍의 ‘취약한 실체’에 있다. 탤런트 한 명의 출연 여부에 따라 뿌리째 흔들리는 한류열풍이 무슨 놈의 ‘한류’이고, ‘열풍’인가. 그리고 그 취약한 실체가 바로 한국식 연예마케팅의 ‘한계’라면 그건 지나친 비약일까.
 
<슬픈연가>는 기획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린 드라마다. ‘대박제조기’ 김종학 프로덕션의 제작과 일본 등 외국 투자자들의 참여도 화제가 됐지만, 송승헌, 권상우, 김희선 등 당대의 톱스타들이 사상 최고의 출연료(회당 2천만 원)를 약속받았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자본과 스타, 그리고 검증받은 제작진까지 3박자가 맞아들어간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랬던’ <슬픈연가>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위기에 처한 것은 결국 한국 문화산업판의 자승자박이다. 설령 송승헌의 ‘대타’를 구하려한다 해도 모든 배우들이 기획사측의 손아귀에 있는 현실 속에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문광위 의원이 숱한 여론의 뭇매를 예견하면서까지 벌인 행위가 고작 ‘송승헌 살리기’ 정도였다면, 그의 문화적 소양은 물론 ‘정치적 감각’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익명을 요구한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백 번을 생각해봐도 도대체 우 의원이 왜 그런 식으로 송승헌의 편을 들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국회의원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송승헌이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한류열풍을 살리느냐 죽이느냐도 아니다. <슬픈연가> 한 편이 엎어진다고 사그라들 한류열풍이면 그건 애초부터 신기루였을 뿐이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군대가 아니라, 군대 밖의 사회에 있다.
 
예의 보수세력의 반발로 병역법을 뜯어고칠 수 없다면, 병역 이외의 법과 제도라도 손을 봐야 한다. 그게 ‘문화’를 전담하는 정치인들의 할 일이다. 혹자는 “병역법보다 더 손 대기 어려운 게 ‘그쪽 판’의 시스템”이라고 항변한다. 그래서 더욱 ‘절실’한 문제다. 연예인 한 명의 병역문제 때문에 온 국민이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촌스런 작태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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