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환경성검토 제도로 규제가 대폭 강화돼 공장 신·증설이 불가능해졌다.”
“출자총액제한제도로 인해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하다.”
“4대보험의 기업부담률을 줄여달라.”
“기간제 근로계약 제한 폐지하고, 노조와 근로자의 부당노동행위 신설하라.”
“산업재해 요건 강화하고, 노동부 고시 이외의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에서 제외하라.”

경제단체들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었다.
 
10월 11일 대한상공회의소(상의)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YMCA 등과 함께 반기업정서 해소를 위한 ‘기업사랑 협의회’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협의회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국민과 함께 하는 기업의 미래상 등 일반인들에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컨텐츠를 공동 개발하고 이를 적극 홍보해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들 단체가 말로는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를 해소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연출’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업 이기주의’에 입각한 요구들만을 여전히 주장해왔음이 확인됐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업사랑협의회’ 현판식을 가진 날, 경제5단체가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219개 기업규제 개선 건의서’<사진> 내용을 통해서이다.
 
총 34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건의서는 한 마디로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요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예의 ‘출자총액제한제 완화’ 부분이다. 재계는 그동안 주술처럼 되풀이해온 이 ‘해묵은’ 요구를 이번엔 ‘국내기업 방어’를 빌미로 다시 꺼내들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로 인해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엔 최근 삼성전자 등 우량기업들의 외국 지분율이 높아짐에 따라 이들 기업이 위기에 몰렸다는 ‘경제계 괴담’이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삼성은 ‘대한민국 간판기업을 외국인에게 넘겨줄 것인가’라며 여론을 몰고갔고, 이를 확산시킨 것은 물론 각종 ‘경제신문’들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조선일보조차’ 등을 돌렸다. 조선일보는 11일자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세계적인 초우량기업 노키아(핀란드)는 외국인 지분율이 89%에 달해 경영권 탈취 노이로제에 걸려 있을 법한데,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다”며 “삼성전자가 그룹에 중요한 회사라면 우선 이건희 회장은 다른 계열사 주식을 팔아 삼성전자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성의를 보여야 국민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삼성이 아무런 ‘자구노력’ 없이 ‘지배구조 유지’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장은 출자총액 완화를 둘러싼 이들의 주장에 대해 “결국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소유구조를 완전히 자유롭게 풀어달라는 이야기밖에 안된다”며 “이는 자신들의 부실한 재무구조를 더욱 부실하게 만들뿐 아니라, 기업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이상한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경영권 방어는 주장하면서도 지주회사가 ‘기업지배를 목적으로 자회사외 국내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 공정거래법 조항에 대해선 반발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조항이 ‘기업의 이윤극대행위를 제약하는 규제’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경영권 보호’를 외치는 한편으로 타기업에 대한 ‘소유행위’는 허용해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결국 ‘투기자본 규제’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잇권을 극대화하려는 재계의 노림수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반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는 ‘기업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우선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요건’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서 단순히 ‘경영상의 필요’로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해고요건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조차 귀찮으니 언제라도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논란이 된 ‘비정규직 개악안’을 뛰어넘는 요구, 즉 아예 파견근로의 제한기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파견제한 규정이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파견 당사자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들은 또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시 노조에 대한 통보기한을 현행 60일 전에서 ‘30일 전’으로 완화해달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영업양도, 자산매각시 고용승계 의무가 ‘면제’되는 것을 ‘명문화’하자고까지 주장한다.
 
‘공정한 노사관계 확립’을 위해 노동조합과 근로자에 대해서도 ‘부당노동행위제도’를 인정, 벌칙조항을 신설하자는 주장도 제기했다. 특히 노조 교섭력이 사용자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경우 불공정한 노동관행, 권리남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그런가보다. 
 
‘4대보험’의 기업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헛웃음만 나온다. 이들은 ‘4대보험료의 회사부담분이 직접인건비의 10%에 육박하여 기업의 자금부담이 되고 있다’며 앓는 소리를 낸다. 이쯤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커녕 사용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덕률마저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들이 산업재해 판정 기준, 특히 근골격계 관련 질환의 판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며 무려 20여개 항목에 걸쳐 ‘아우성’을 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장설립과 토지이용에 대한 규제완화도 주요하게 제기됐다.
 
이들은 먼저 부지면적 3만㎡ 이상의 공장을 계획관리지역에 신·증설할 경우 건축, 환경, 교통 등을 감안한 개발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국토계획법을 문제삼으며 이 경우 1억 5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이의 수정 및 폐지를 요구했다. 국토계획법은 무분별한 국토 난개발을 막고, 환경친화적 국토개발을 위해 마련된 법안으로 시행된 지 아직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또 ‘사전환경성 검토’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었다. 수천만 원의 용역비를 부담해 검토서를 작성하는 것은 기업의 사업의욕을 저하시킨다며 기업 대신 지방환경청이 전담기구를 설치해 ‘알아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엊그제 한국일보의 보도는 이런 주장을 무색케 한다.

환경운동연합은 12일 “경기도와 파주시가 신청한 문산LG협력공단 조성계획에 대한 사전환경성검토가 졸속으로 부실하게 이뤄졌다”며 환경부에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2000년 8월 도입된 사전환경성검토 제도는 개발계획 수립 초기단계부터 환경성을 따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주요 행정절차가 끝난 뒤 사업실행 직전에 가서야 이뤄지는 환경영향평가의 허점을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사업시행주체가 작성해온 보고서를 환경 당국이 단순히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검토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주체에 대한 처벌조항도 없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사는 실제로 환경부가 지난해 3,618건의 사전환경성검토 가운데 83%(2,994건)에 대해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계획 자체를 거부한 부동의는 전체의 6.4%(232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재협의 등을 통해 사업이 다시 진행된 사례가 많다고도 덧붙이고 있다.
 
결국 경제계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현행 사전환경성검토 제도가 기업측에게 규제 수단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의 박경애 간사는 “실상을 보면 개발사업을 할 때 기업들이 환경성검토를 피하기 위해 부지를 토막 내 신고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며 “이에 대한 법적인 제재도 약소한 벌금형에 불과한 실정에서 그나마 있는 제도마저 안 하려는 기업의 태도는 과장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방환경청이 사전환경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기업의 주장에 대해선 “중앙 환경부조차 제대로 검토를 못하는 실정에서 지방환경청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건설·주택 분야의 요구사항도 문제가 많다. 이들은 재건축시 소형주택 공급을 의무화한 부분을 지적하며 소형주택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재건축아파트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조합원의 추가부담금이 상승하면서 사업포기 또는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조합원의 부담증가’를 핑계로 건설회사의 이윤율만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장은 “재건축 투기붐이 일어날 때 건설회사들이 대형주택을 중심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나, 소형주택의 경우 그 이익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며 “결국 국민들의 실수요와 상관없이 투기붐에 편승해 과도한 이익을 본 죄과”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말끝마다 ‘영세한 중소기업’을 내세워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토개발계획 수립이나 사전환경성 검토와 같은 대규모 부지조성의 경우 ‘돈 있는’ 대기업들이나 벌일 수 있는 사업이다. 특히 이런 요구는 최근 재계의 ‘기업도시’ 건설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기업 이기주의에 전적으로 기반한 이들의 주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1회용품 사용규제 완화, 개발제한구역 내 물류시설 입점 허용, 폐기물·폐수·대기오염물질 관리 요건 완화 등 환경과 국가의 미래는 염두에도 없는 ‘유아적 요구’들이 총 348페이지에 걸쳐 남발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5단체가 제출한 이 방대한 건의서를 내내 관통하는 정서는 안하무인격의 ‘기업 지상주의’다. 이런 그들이 ‘반기업정서’를 해소하겠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기업의 미래상’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들의 대책없는 넌센스가 행여 최근 “기업이 곧 나라”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용기를 얻은 것이라면 더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기업의 상’과 이런 이기적 건의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란 ‘국민적 기대’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기업들이 판치는 나라에 ‘희망찬 미래’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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