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는 산업 양극화, 소득 양극화, 빈부 격차 확대, 산업간 연계고리 단절 등 성장의 과실이 차고 넘쳐 아래로 흘러내리는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down) 효과가 나타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사회복지 예산은 어떤 규모와 구조를 갖추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상 유지’를 위한 잔여적인 범주에 그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내년 사회복지 지출의 규모가 올해보다 전체 예산 증가율 6%를 훨씬 웃도는 14.4%나 증가했음을 강조한다. 올해 32조3610억원에서 37조185억원으로 약 4조6천억원 늘어난다는 것이다. 올해 1조4천억원에서 내년 1조9천억원으로 40.7% 늘어나는 통일외교 분야를 빼곤, 분야별 지출 증가율이 으뜸이다. 그러니 ‘성장과 복지를 아우르는 예산안’이라는 호평을 받을 만한 것처럼 보인다.

실업자 증가가 복지지출 확대로?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복지 지출 증가액 4조6천억원 가운데 국민연금급여와 실업급여 등 각종 사회보험 급여 지출 증가액이 3조7천억원으로 80%를 차지한다. 이는 경기 부진에 따른 실업 증가, 연금가입기간 충족 등 사회복지 급여를 받기 위한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동적으로 증가하는 지출이다. 연금이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을 완화했다거나 지급액을 상향 조정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재분배 기능이 거의 없는 기존 실업급여나 국민연금의 문제점은 그대로 이전된다.

이런 자동적인 지출분을 제외한 사회복지 지출 증가액은 9천억원밖에 안 된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더한 예산을 기준으로 따질 경우, 올해 12조8700억원에서 내년 13조6천억원으로 7300억원 늘어날 뿐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7300억원은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 기준을 완화해 140만명에서 146만6천명으로 늘리고 11살 이하 아동에 대한 의료급여를 적용하는 데 2300억원,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 2100억원, 노인 및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 620억원, 공공의료 확충 942억원 등으로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정부와 여당이 말하는 서민생활 안정의 알맹이에 해당한다.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아우른다거나 복지에 치우친다는 언론의 평가와는 정반대의 실상인 셈이다.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대통령은 “지금 우리 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은 이미 원인이 5년, 10년 이전에 축적된 것이어서, 정부가 세금을 거둬 나눠주는 재분배로는 분배 문제를 시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분배는 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일찌감치 강조했다. 내년 복지예산은 이런 대통령의 발언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신자유주의 성장론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복지와 분배는 7,300억원이라는 앙상한 수치가 상징하듯이, 잔여적(residual) 범주에 그칠 뿐이다.

시장은 '시장실패'를 치유 못한다

한국 자본주의 성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 필요성은 누누이 지적돼 왔던 터다. 그 핵심은 바로 대통령이 애초 강조했던 구호인 ‘분배를 통한 성장’이었다. 여기에는 성장의 과실이 밑바닥까지 전달되는 구조를 짜는 것까지 포함됨은 물론이다. 파괴된 산업간 연계고리 회복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단기적으론, 카드 거품이 유발한 성장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강도 높은 대책을 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대해 정부는 이미 특단의 대책을 폈으며 그 방향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카드 거품의 후유증인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지 않다. 10억원(담보채무)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고액 신불자나 채무자에 대해서는 개인파산제 말고도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제를 최근 실시했다. 하지만 나머지 채무자에 대해서는 ‘시장원리’와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미봉책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 5월 말 현재 신용불량자 373만7천명 중 500만원 미만 신용불량자 116만5천명의 빚은 2조4,233억원, 500만~1천만원 미만은 53만명, 3조8,424억원, 1천만~1억원 미만은 167만명, 57조2,539억원이다. 적어도, 1천만원 미만의 신용불량 채무 6조2,600여억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탕감을 포함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특히 청년층에 속하거나 차상위 국민기초생활보장대상자에 속하는 신불자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정부의 공적 자금, 각 은행들의 예대마진의 일부로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제 대상은 1천만원 이상까지로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실업 상태에 있는 신불자들에게는 사회서비스 부문을 포함한 공공부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할 것이다.

시장 및 자율 원리로 신불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마도, 해마다 6%씩 적어도 10년은 계속되는, 양극화 없는 경제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한 꿈이다. 차분한 공론과 언론의 협조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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