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영화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지난 96년 첫 번째 행사를 치를 때만 해도 한국에서의 국제영화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홉 해를 넘기면서 부산영화제는 이제 세계 영화인들에게 아시아 영화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반 몇 년은 국내 영화인과 열혈 영화 관객들의 ‘자축’ 성격이 짙었으나 이제는 전 세계 영화 제작자들과 배급자, 그리고 이 영화제에 맞춰 관광을 즐기려는 여행객까지 넘쳐나면서 ‘국제’영화제로서의 외향적 품격 또한 갖춰가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제 국내외 부산영화제 스폰서를 자처하는 기업은 넘쳐나고 있고 내년이면 영화제 전용관도 개관한다고 한다. 그것은 편당 영화관객 1천만 시대를 열고 있는 시대적 조류일 수도 있다.

또한 부산이라는 가을 해안도시의 낭만적인 자연환경과 다소 환상적인 영화제의 분위기가 어울려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서의 야외 상영 등의 이벤트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산영화제의 발전 요인은 영화제의 아시아 ‘스타감독’을 발굴하고 그들의 영화를 미리 선점해 소개한 프로그래머들의 ‘기민함’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7~15일까지 9일간 부산 바다를 달군다. 올해 상영되는 작품은 역대 최다인 63개국 266편. 지역별로는 한국 58편, 아시아 102편, 월드 106편이다. 특히 올 영화제에는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이 39편이나 참가, 이 역시 역대 가장 많은 작품편수다. 부산영화제 출품 열기가 얼마나 달아 오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공식 참가부문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모두 9개 부문. 아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아시아 영화의 창’(45편)을 비롯해 ‘뉴커런츠’(12편), ‘한국영화 파노라마’(13편), ‘월드시네마’(51편), ‘와이드 앵글’(74편), ‘오픈 시네마’(7편), ‘크리틱스 초이스’(10편) 등이다.

올해 개막작은 홍콩 왕가위 감독의 <2046>, 폐막작으로는 한국 변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주홍글씨>가 선정됐다. 그러나 이제야 개막작 관람을 결심했다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지난 16일 인터넷 예매를 시작한지 4분 54초 만에 매진됐다.

개·폐막작이 상영되는 수영만 야외상영장을 비롯해 남포동 부산극장과 대영시네마, 해운대 메가박스 등 부산의 크고 작은 17개 상영관에서 바다와 어우러진 영화 축제가 펼쳐진다.

개·폐막작

개막작<2046>은 왕가위 감독의 전작인 <화양연화> 이후 몇 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제목은 홍콩의 중국 반환 50주년을 의미하는 숫자이자, 주인공인 주선생이 쓰는 SF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었지만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쳐 이번에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과거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감각적인 영화다.


폐막작 <주홍글씨>는 독립단편 영화들로 이름을 알리다 첫 장편 데뷔작 <인터뷰>로 관심을 끌었던 변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한석규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로 아내의 친구와 불륜관계에 있는 한 형사가 피살자의 아내이자 유력 용의자이기도 한 여성과 육체적 매혹에 빠지는 에로틱 멜로,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주요 작품들 

‘아시아 영화의 창’에서는 최양일 감독의 신작 <피와 뼈>,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박치기>, 아오야마 신지의 <호숫가 살인사건> 등이 상영된다. 상당수 작품이 이 영화제에서 초연을 한다. 중국의 지하영화작가들과 제5세대 감독들의 작품이 대거 초청됐다.


또 이상일의 <69>, 허우샤오셴의 <카페 뤼미에르>,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앨리스>, 미이케 다카시의 <이조>, 사카모토 준지의 <세상 밖으로>, 고레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쿨의 <열대병> 등 올 한 해 아시아 스타 감독들의 영화가 대거 소개된다.

‘월드 시네마 부문’에는 <21그램>, <비포 선셋> 등 개봉을 앞둔 미국 화제작 외에도 지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토니 갓리프의 <추방된 사람들>,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잃어버린 포옹> 등이 초청됐다. 뿐만 아니라 장 뒥 고다르의 <아워 뮤직>, 에밀 쿠스트리차의 <인생은 기적처럼>, 파트리스 르콩트의 <친밀한 타인들> 등이 무게를 더한다. ‘오픈 시네마’ 부문에서는 켄 로치의 <다정한 입맞춤>이 포진돼 있다.

‘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에서 기대되는 신예들의 초연작들도 눈길을 끈다.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 신재인 감독의 <신성일의 행방불명>, 조범구 감독의 <양아치 어조> 등이 그것이다.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와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그리고 지난 11일 폐막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빈 집> 등도 상영된다.

특별기획 프로그램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회고전’이 마련돼 있다. 그의 대표작 12편이 상영된다.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 한·홍 합작시대’에서는 1960부터 약 20년 동안 전성기를 이뤘던 한국·홍콩 합작 액션물 9편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최대의 영화교역시장으로 성장한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은 7∼9일 부산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다. 여기서는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새 프로젝트를 내걸고 투자자를 찾고 있으며 장선우, 이수연, 민병훈 감독도 올해 PPP에 참가한다.

영화제에서 스타들을 보는 즐거움을 빼 놓을 수는 없는 일. 국민배우 안성기와 함께 아직은 TV 브라운관 <대장금>이 익숙한 이영애가 개막식 사회를 맡았고, 폐막식 사회는 원숙한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태우와 배종옥이 맡는다. 폐막작 주인공인 한석규, 이은주, 성현아를 비롯해 많은 국내 스타도 직접 영화제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또한 개막작의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를 비롯해 세계적인 스타들도 몰려온다.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회고전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하고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대만의 허우샤오셴,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이와이 순지,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독일 영화의 대가 빔 벤더스 등과 세계 영화계의 주요 인사들이 영화제를 위해 부산을 찾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