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아직 차지 않았습니다.
 
추석을 닷새 남겨둔 23일, 달은 이제 상현입니다. 배가 조금 볼록 나왔을 뿐, 휘영청 밝다고 하기엔 빛도 약합니다. 
 
추석 보름달을 생각했습니다. 생각하다, 아직 차지도 않은 달을 보러 월곡동엘 갔습니다.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이름부터 ‘달이 사는 골짜기’입니다. 굳이 ‘월곡(月谷)’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달동네’라 부르는 곳입니다. 달동네에 달을 보러 가다니, 자신의 치기를 조롱하며 ‘월곡’을 올랐습니다.
 
골목(오후 2시 10분께)
 
사람 한 명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의 가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거미줄을 연상시킵니다. 가난의 상징 같은 이 골목엔 그러나 표정이 있습니다. 집이 좁은 달동네 월곡동 주민들은 골목을 안방처럼 씁니다. 골목에서 서로의 대소사를 나누고, 골목에서 집안일도 합니다. 어스름 저녁, 하루를 털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곳도 골목입니다. 
 
‘산’이는 오줌을 누고 있었습니다. 작은 고추에서 오줌이 조록조록 흘러 나왔습니다. 손에 오줌방울이 튀자, 손을 코에 갖다대고 킁킁대던 산이 얼굴이 찡그려졌습니다. 순간 산이 눈과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산이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월곡으로 인도하는 골목에서 만난 3살 쌍둥이 형제, ‘강’과 ‘산’이도 골목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공가(公家)’ 투성이인 달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도 골목인 까닭입니다. 사진을 몇 장 찍어주자 금새 친해졌습니다. 아저씨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잡던 강산이는 아저씨 수첩을 보더니 ‘다양한’ 주문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산토끼 그려 주세요.”
대저 ‘강산’은 맑고 푸르게 자라야겠기에, 토끼인지 늑대인지 모를 그림을 그려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나비 그려 주세요.”

주춤했습니다. 그랬더니 강산은 노래를 부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역시 ‘강산’은 맑고 푸르게 자라야겠기에, 나비인지 비행기인지 모를 그림을 그렸습니다.
 
“호랑이 그려 주세요.” 강이의 주문입니다.
“사자 그려 주세요.” 산이의 주문입니다.
“얘들아, 있잖아….”
 
이젠 막 소리를 지릅니다.
“사슴 그려요, 사슴.” 
 
월곡동엔 저희들끼리 놀고, 저희들끼리 자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강산이도 맞벌이로 바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하고 월곡동에 삽니다. 산이가 말합니다.

“엄마아빠 보고 싶어요.”
이번 주말, 강이와 산이는 엄마 아빠를 보러 갑니다. 추석은 가족상봉의 날입니다.
 


 
금간 집 (오후 4시께)
 
두산 위브, 동아 에코빌…, 동네 아래쪽엔 벌써 말끔한 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지금도 삼성이 ‘아름답고 편안한 집(래미안)’을 만드느라 공사 소리가 온종일 동네를 시끄럽게 합니다. 안 그래도 “월곡 제1구역 내 전체 건축물은 재난위험 건물이 산재하여 이를 방치할 경우 안전사고가 우려되어 주민 여러분의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성북구가 재난구역으로 지정한 마당에, 삼성의 발파작업으로 산2번지 건물들 벽엔 쩍쩍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벽에 난 금이 아시아대륙의 지도를 빼닮은 집 앞,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집 앞이라기보단 골목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추석계획이 어떠실까 궁금해 할머니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박강덕 할머니는 올해 85세십니다. 전남 진도에 사시다 삼사 년 전 월곡동으로 들어오셨답니다. 진도에서 혼자 생활하시기가 힘들어 아들 사는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단칸방에 혼자 계시는 게 너무 싫어서 하루 종일 골목에 앉아 계신다는 할머닌 이곳 생활에 너무 힘겨워하셨습니다. 
 
“진도서는 쌀도 주고 생활비도 줬는디, 여기서는 그것도 뚝 끊었불고 교통비밖에 안 줘요.”
 
“우째 안 주는지 내가 알겄어? 주민등록증 잃어버려서 동사무소에 갔다가 먹고살도록 혜택 좀 달라 그랬더니 직원이 아무 말도 안 해요. 안 주니까 어쩔 수 없지. 생활비가 전혀 없어요. 목숨 안 떨어지니께 사는 거지. 아들이 바로 집앞에 살아도 얼굴도 못 봐요. 즈그들 살기도 힘든께…. 이제 살만큼 살았고 어서 죽고 잡은디, 살고 잡은 마음 하나도 없는디, 생각하면 서럽기만 하고, 모진 목숨 죽어지지도 않고, 억지로 죽지도 못하겄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께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것고.”
 
할머니는 “혜택 좀 보게 해 달라고 동사무소에 이야기해도 안 된대요”를 몇 번씩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씀도 꼭 그만큼 되풀이하셨습니다. 세 달에 한 번씩 교통비조로 받는 5~6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라 하셨습니다. 주름투성이 할머니는 많이 지쳐 계셨습니다.
 
양양금 할머니가 산2번지로 들어오신 지도 올해로 10년째가 되신다고 합니다.
 
“서방이 경찰질 하다가 인공 때 맞아 죽었어요. 그 때가 스물네 살 때요. 죽 혼자 살았지. 난 생활보호대상자라 한 달에 25만원씩 나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5만원 떼고 20만원만 나와요. 며칠 전에는 저기 밑에서 아파트 짓는 회사서 보상금조로 10만원 준 거 받아서 이번 달에는 30만원 받았네.”
 
삼성건설이 공사 피해정도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받은 돈은 고작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지만 할머니들껜 좀처럼 만지기 힘든 거금입니다. 마침 지나가시는 친구 할머니께 양금 할머니가 물으십니다.
 
“보상금 10만원 나온 거 찾았능가?”
“나왔어? 난 보도 안 혔는디.”
“나왔제. 난 어제 찾았어.”
“그랬구마.”
“난 10만원 나왔던데.”
“그럼 나도 통장 확인해 봐야 쓰겄네.”
 
할머니들께 추석인데 어떻게 지내실 거냐고 여쭸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 말입니다. 
 
“우리 같이 혼자 사는 노인들한테는 추석이 뭔 추석이요? 혼자 이러고 있응께 뭘 하겄소. 아들은 내가 먹는지 굶는지도 몰라요. 죽어나가도 몰라요. 자석이 놀러는 오지라. 놀러는 오지마는 지 살기도 곤란한께…. 내가 사는 기 시방 세상도 아니고, 네상도 아니요.”(강덕 할머니)
 
“추석 때 하긴 뭘 해요? 이렇게 혼자 있는데…. 너무 오래 살았지. 내가 올해 팔십셋이에요. 나는 죽음이 친척 따라가는지 알았더니, 그게 아닌갑소. 친정어머니가 서른셋에 돌아가시고, 친정 고모들도 다 육십도 안 돼 돌아가셨는데, 나만 쓸데없이 지금까지 살아. 죽음이 친척 따라 가는 줄 알았는데….”(양금 할머니) 
 
“여기선 보름달도 더 잘 보일텐데, 달 보면 무슨 소원 비세요?”
 
라고, 여쭤 보려다 차마 입을 못 뗐습니다. 할머니들껜 ‘추석’도 ‘보름달’도 더 외롭게만 만드는 단어였으니까요. “난 왜 월곡동엘 오겠다고 했을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을 듣고, 뭘 보고 싶어서였을까? 달을 보겠다고 달동네엘 가다니…. 부끄러웠습니다.
 
저무는 해와 뜨는 달 (오후 5시 30분께) 
 
오후 5시를 넘기자, 해가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지는 해 반대쪽 하늘에선 희미하게 달이 보이기 시작했고요. ‘월곡’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는 참이었습니다. 달이라지만 아직은 햇빛이 강해 동그란 구름 한 점처럼 보였습니다.     
 

달이 제 빛 내길 기다리며, 동네 남자 주민 한 분께 여쭸습니다. “산2번지는 언제쯤 헐리나요?”
 
“재개발된다는 말만 들었지, 우리도 몰라요. 철거돼도 걱정이여. 우린 없는 사람들이 돼 노니까 막연하지요.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 있겄어. 돈 있는 사람들이야 집 사서 착착 나가지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때 당해 봐야 알지.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야 다 세입자들뿐이에요. 집주인들은 외지에서 분양권 노리고 집 산 사람들이고. 어디든 다 그렇지 뭐. 정작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나그네들이지.”
 
손을 다치신 것 같았습니다. 손가락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습니다.
 
“정부 시책이 문제야. 뭣하면 다 재개발한다고 밀어버리고. 나 같이 노동일 하고 사는 사람들이야 나갈 데도 없는데. 나만 해도 일도 없고 손도 다치고 해서 놀고 있잖아요.”

“보름달이요? 젊었을 때야 달 보고 바라는 것도 빌고 그랬지, 이 나이에 뭘 바라겠어요. 일이 잘 돼야지. 일이 안 되는데 뭘.” 
 
월곡동에 뜬 ‘또 다른 달들’ (저녁 8시께)
 
마침내 산2번지에 해가 지고 달이 밝았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모두 보름달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던 ‘전설 같은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달동네에 살면 달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다”며 넉살 좋게 웃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입니다.
 
달을 보겠다고 찾은 달동네에 달이 떴지만, 주민들은 달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 사람들이 그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 때, 정작 달이 사는 동네 주민들은 달 한 번 쳐다 볼 여유가 없는 듯 했습니다. 달 마저 산 아래 사람들이 가져버린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자고 농민이고 서민이라면, 산 아래 살건 위에 살건 달 쳐다볼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권여당 의장실을 점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했고, 농민들은 피 땀흘려 자식처럼 가꾼 논을  추수를 얼마 안 남기고 갈아엎은 가을이니까요.
 
저도 ‘달골짜기’를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산밑에 이르렀을 때 고개를 들어 달동네에 뜬 달을 바라봤습니다. 순간 제 눈이 어지러웠습니다. 거기엔 ‘또 다른 달들’이 여럿 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선 ‘아름답고 편안한 아파트’를 짓고 있는 삼성건설의 초대형 크레인 다섯 대가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크레인 조명등 불빛들은 저 멀리 보이는 달 빛 한 점과 뒤섞여 수십 개의 달이 떠오른 듯한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눈 낮은 인간들에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달동네를 잠식해 들어오며, 크레인은 달동네 달빛마저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달동네 달빛을 한낱 불빛 하나로 만들면서.    
 
달은 아직 차지 않았습니다.
 
추석을 닷새 남겨둔 23일, 달은 이제 상현입니다. 크레인 불빛에도 밀려난 보잘 것 없는 빛입니다. 하지만 달이 다 차 완전한 보름달이 됐을 땐, “모쪼록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 한 마디, 달빛 보며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올해조차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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