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凉山)에는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곳곳의 기암과 층층의 절벽마다 가을이 또아리를 틀었다. 감히 국내 사찰 중 으뜸의 ‘풍광’이라고 말해도 좋을 청량사 경내와 달디 단 청량폭포 옆 우물가에도 여린 가을이 살며시 스며들었다. 청량산을 휘감아도는 낙동강 광석 나루터변의 물 빛은 그대로 ‘가을빛’이다. 아직 단풍이 채 물들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곧 색색의 물결을 이룰 듯 가을햇살에 반짝거린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3대 기악(套岳)으로 손 꼽히는 경북 봉화의 청량산. 12개의 아름다운 봉우리와 8개의 동굴이 말해주듯 산세의 수려함이 두 산 못지 않지만, 웬만큼 산행을 즐겨본 이가 아니고서는 청량산은 조금 생소하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峯)을 남이 알까 두렵다’며 노래했던 퇴계 이황의 각별한 ‘애정’ 탓일까,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청량산은 주변의 주왕산이나 불영계곡 등에 비해 ‘전국적’인 유명세가 덜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산세의 수려함과 달리 청량산은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다. 어느 곳에서 올라도 너댓 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을 만큼 아담한 크기를 지녔다. 청량산이 국립공원이 아닌, 도립공원에 머물러 있는 데에는 이런 까닭이 있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겐 자연스레 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매표소 부근에 서너 곳의 민박집이 생겼을 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원 내에 있는 두 군데의 ‘쓰러질 듯 낡은 민박집’이 숙소의 전부였다. 말이 민박이지, 그저 산 속에 지은 ‘산채’ 같은 분위기다. 그 흔한, 모텔이나 유흥시설은 주변 읍내나 안동 인근까지는 가야 찾을 수 있을 만큼 개발의 발길도 더디다.

하지만 어쩌면 이처럼 ‘낙후한’ 주변환경이 지금의 청량산을 지켜준 셈이다. ‘도시의 냄새’가 없는 만큼 이 곳엔 향락객들의 폭력적인 놀이문화도, 유원지의 바가지도 없다. 청량산엔 때묻지 않은 자연의 향기가 온전하다.
  
청량산 산행은 청량폭포에서 20여분 떨어진 ‘입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차가 오를 수 있는 ‘모정’ 길은 경사가 가팔라 4륜구동이 아니고선 엄두를 낼 수 없다. 입석에서 청량사까지는 완만한 길을 따라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다만, 등산로의 폭이 협소하고 길 옆 낭떠러지의 경사가 급해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은 다소 주의를 요한다.
 
청량사(?凉寺)는 서기 663년,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본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ㆍ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엔 종이를 다져 만든 ‘지불(紙佛)’이라는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청량산으로 피신을 왔던 고려 공민왕이 유리보전의 현판을 썼다고 전해진다.
 
굳이 정상을 밟을 요량이 아니라면 이곳 청량사까지만 올랐다 내려와도 좋다. 열 두 봉우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청량사의 풍광은 가히 으뜸이다. 특히 응진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보는 청량사는 ‘한폭의 수묵화’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구름으로 지은 청정도량’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사찰을 둘러보고 내려와 마시는 경내의 약수는 마치 설탕을 탄 듯 달디 달다.
  
청량사에서 김생굴을 지나 정상인 의상봉(870M)까지는 두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다만, 김생굴 너머에서부턴 길이 가파르고 암벽이 많은 만큼 산행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한다.
 
청량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꾼의 집’을 찾는 일이다. 입석에서 청량사로 오르는 길 중턱의 ‘오산당’(퇴계가 후학들과 강론하던 곳) 옆에 있는 이 ‘초막’엔 집 주인 이대실씨(60)가 등산객들에게 거저 약차를 내준다. 해외원정 등반 횟수만 30여 차례를 자랑하는 전문 산악인이었던 그는 경북 영양에서 큰 예식장을 운영하다 말고, 1991년 이 곳으로 들어와 아예 ‘산 사람’이 되었다. 재산도, 가족도 모두 저 산 아래에 묻어 두었다.
 
그는 ‘입산’한 이래 목공과 도예 기술을 익혀 미술대전에서도 입상할 만큼 실력을 쌓았지만, 결코 남에게 팔지는 않고 구경만 시킨다. 벌써 각종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그는, 왜 산에 들어왔느냐고 물으면 “물 속에 비친 달처럼 살다 가려고 들어왔다”고 답한다. 퍽 낭만적인 ‘선문답’이지만, 속세가 아닌 청량산에선 이 말이 절실히 와닿는다.
   
청량산에서만 열 네 번째 가을을 맞는 그는 “청량산은 봄·여름·가을·겨울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이 으뜸”이라며 “단풍이 유명하다는 산을 여러 곳 가봤지만 청량산과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산의 단풍과 달리 빨갛고, 노랗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갖가지 색깔이 온 산에 물드는 까닭”이란다. 나무의 종류가 다양한 데다, 갖가지 색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의 색이 유달리 다채롭다는 것이다. 청량산의 단풍은 이달 말부터 시작해 다음달 중순경쯤 절정에 이른다.
 
전국의 다른 명산들에 비하면 아직 사람의 손때가 덜 묻은 청량산이지만, 청량산에도 서서히 개발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산 속에 인공폭포를 만들고,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세우려는 군청의 시도가 청량산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에서도 오지나 다름없는 봉화로선 청량산을 전국적인 명산으로 발돋움시켜 군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싶겠지만, 더 이상의 욕심은 삼가길 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청량산에는 그럴 듯한 숙박업소도, 밤새 여는 요식업소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저 삼삼오오 마음 맞는 이들과의 조용한 산행을 즐기시고 돌아오길 빈다. 행여 왜 여긴 모텔이나 노래방이 없느냐고 관리사무소에 따지지는 마시라. 단풍놀이철만 되면 이처럼 땡깡을 피우는 이들 때문에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몹시 피곤하단다.
 

청량산 가는 길

동서울 터미널에서 봉화까지 하루 여섯 번 버스가 다닌다. 봉화에선 하루 네 번 버스가 있고, 안동시에선 여섯 번 버스가 다닌다. 안동에선 1시간, 봉화에선 40분이 소요된다.
 자가운전자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IC→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918번 지방도→봉성→명호→35번 국도→청량산으로 접근한다.

숙박 및 식사

청량산 매표소를 지나 청량폭포 부근과 휴게소에 ‘오래된 민박’이 두 군데 있다. 매표소 건너편 강변에 비교적 깨끗한 세 군데의 민박집이 있다. 가격은 4-5명 한 방에 2-3만 원대. 성수기에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바가지가 없다.

매표소 맞은 편 청량산 박물관 입구에 있는 ‘까치소리’는 대구에서 교편을 잡던 교사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 간고등어와 산채비빔밥 등 식사거리와 술안주거리를 내놓는데 음식 맛이 각별하다. 놀랍게도 이들 부부는 청량산 개발 ‘반대론자’들이다.  
청량산과 가까운 봉화군 봉성면은 돼지고기 소나무숯불구이로 유명하다.


청량산 도립공원 홈페이지 (
www.bonghwa.go.kr/cheongryang)
봉화군 문화관광과 054-679-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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