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려면 먼저 변해라”. 이는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경구이다. 이 경구가 담고 있는 의미는 보수주의 혹은 보수주의자는 단지 ‘좋았던 옛날 것’을 지켜내려고만 할 때, 정작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정치는 진보정치세력의 부재도 부재지만, 보수정치세력의 부재로부터도 크게 고통받아왔다. 진보-보수정치 세력 간의 생산적인 이념·정책적 경쟁의 부재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규정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 복지국가체제의 수립은 진보-보수정치세력 간의 합리적인 이념·정책 경쟁의 성과에 다름아니다.
 
이와 관련해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복지국가체제가 공고화된 것이 대체적으로 보수주의 정권 하에서였다는 점이다. 악명 높은 ‘신보수주의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대처 정권마저도 예산편성 및 운용에 있어서 복지국가체제로부터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른바 ‘복지국가불가역성테제’를 입증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수주의 정치세력임을 ‘자처’하는 이들, 특히 한나라당은 복지국가의 의제화 자체를 봉쇄해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복지보다는 오로지 성장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성장의 동력일 수 밖에 없는 노동력의 재생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보다도 더 많은 사망원인이 되어버린 자살. 그 중에서도 우리는 ‘생계비관형’ 자살이 급격히 증가되었음을 목도하고 있다. 2002년 대비 2003년 통계기준으로 생계비관형 자살이 무려 50%가 넘게 증가했던 것이다. 생명마저 앗아가는 이른바 ‘빈곤형 자살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상하게 복지국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들의 ‘천박함’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한나라당은 끝갈 데 없는 민생파탄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탈냉전시대에 어울리지도 않는 ‘국가보안법 결사수호’를 외쳐대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행정수도이전이라는 국가주요정책에 대해서도 ‘정략이라는 계산기’만 두들기고 앉아 당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선방’에 성공, 121석을 차지하여 보수정당의 ‘건재함(?)’을 자랑했다. 이때 정당·선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대표체제의 포지티브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체제의 특징 중 하나인 박세일 의원(현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상징되는 당내 전문가 그룹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보수정당의 ‘정상화’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정략이 아닌 정책을 중심으로 한 보수정당의 자기혁신이 이루어져 보수정당다운 정당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겠다며 총선 직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와 ‘3대원칙 5대과제협약’을 맺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기대가 한낱 허튼 꿈은 아닐 수 있겠다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또 한 번의 ‘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국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 박근혜 대표는 “국보법 폐지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며 시민사회내 냉전수구 세력을 동원(‘자발적인 참여’이기도 했겠지만)하여 나라를 온통 소모적인 정쟁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다가는 ‘2050프로젝트(20대 유권자들로부터 50%를 획득해 집권하겠다는 프로젝트)’에 별로 도움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며칠전에는 국보법 유지의 핵심이유인 2조 조항(정부참칭)의 삭제와 명칭 변경도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박근혜 대표는 대선에서 두번이나 낙방한 이회창 전 총재가 무서웠는지 그와 만난 자리에서 “여야 간에 논의해보자는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결국 박근혜 대표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행보 끝에 한나라당은 국보법 문제를 둘러싸고 내분을 겪고 있다.
 
‘진성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소설가(이제는 원래 직업이었던 저널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이문열씨의 충심어린 어린 ‘폐지수용’ 조언 조차 발디딜 틈이 없는 정당임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해서는 당내 전문가 그룹의 한 축인 박형준 의원(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의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제출된 안을 당론으로 확정시키는 데 실패했다. 득표전략을 우선 고려한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근간에 들어 한나라당을 보면서 실망했던 것은 개혁적 보수주의를 주창했던 박세일 의원이 오히려 냉전-수구 세력과 유사한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을 보면서이다. 박세일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나라 선진화와 당의 진로」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에는 분명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반민주 반시장’이 그 중심을 이루어 왔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올바로 열려면 바로 이 ‘반민주 반시장 사상’과 결연히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싸움의 진정한 목적은 그 자신이 발표문 중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주류세력의 교체” 시도에 대해 단지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간의 기대와 달리 ‘전투적 냉전-수구 이데올로그’로 전향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개혁적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그라면, 80년대 이후 형성되어온 진보이념이나 정책들 속에 담겨져 있는 ‘위민주의’의 정신이 갖는 건강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 방송토론회에 나와 스스로 “보수가 보수일려면 진보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박근혜 대표나 박세일 의원이나 한나라당의 변화를 주도해야 할 이들이 당의 자기혁신을 강하게 추동하지 못하고 아직은 울창하게 보일런지 모르는 ‘냉전-수구의 숲’ 속에서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먼저 나서 변화를 주도하면서 진정한 보수정당으로 환골탈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공상’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늦긴 했지만, 더 늦기 전에 한마디 충고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더 이상의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고. 개혁적 보수주의로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제 2의 자민련’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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