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밤 지나면 한가위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결실의 계절이라거니 훈훈한 명절이라거니 하여 덕담을 나누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휴일을 묻혀 지냈다.
 
올해라고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다. 한데 그렇지가 않다. 넉넉함보다는 허허로움이, 훈기보다는 스산함이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은 몇몇 소외된 노동자들의 소회만은 아닌 것 같다. 경기가 너무 나빠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은 아닐 듯싶다. 경기란 늘 좋았다 나빴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난하기만 한 한가위 풍경들

수천만명이 돌아가야 하는 고향 농촌은 수심이 가득하다. 얼마전 도회지에서 성난 몸짓으로 쌀시장 고수를 외쳤지만 메아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올해는 유난한 더위 덕에 대풍이라고 했고 응당 푸근해야 할 터이지만 쌀시장 개방문제로 시골 고향은 우울하기만 하다.
 
시골에 젖줄을 대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즐거워하기란 애시당초 어렵게 되어 있는 셈이다. 노동자의 우울함은 정부가 말하는 노동통계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8월까지 소비자물가는 작년에 3% 오른데 비해 올해는 4.8%나 올랐다. 올 실업률은 3.5%로 0.2%나 높아졌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7.3%로 여전히 달갑잖은 상승추세다.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나라 망친다고 그렇게도 아우성을 쳤던 명목임금 상승률은 작년 10.6%의 절반 이하인 4.5%이고 실질임금은 6.7%에서 1.1%로 떨어졌고 노동생산성 향상률은 계속 오름세라 한다. 경제성장률 5.4%인 올해와 2.9%이던 작년의 임금관계 성적표의 모습이다. 현실의 밑바닥 노동자는 훨씬 심각하다.
 
연중행사처럼 일어나는 체불임금은 올해도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울 공산이 크다. 어김없이 수만명의 노동자가 많지도 않은 월급을 못 받아 배고픔과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에 다른 노동자는 한숨만 쉴 수밖에 없다. 3D업종에 저임금과 인권유린으로 멍이 든 채 이역의 명절 휴가에 쓰디쓴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주노동자의 씁쓸한 표정들은 이제는 익숙해져 있다.
 
의견수렴보다 정부 의지가 문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나 그들이 처한 저임금, 신분상의 불안, 사회적 보호장치로부터의 소외 등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거기에다 최근의 보도는 비정규직 노동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부가 국회에 낸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산재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속에서 지난해 총 9만4,924명의 근로자가 산재를 당해 이중 2,923명이 사망했다. 이는 1999년에 비해 60%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연간 경제손실액은 99년 6조3천억여원에서 2003년 12조4천억여원으로 최근 5년간 2배로 늘어났다. 특히 산재를 입은 근로자는 근속기간 1년 미만이 많았다. 6개월 미만이 전체의 48.8%이였고 6개월-1년미만인 근로자는 10.4%로 1년 미만의 근로자가 전체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파견근로의 확대와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 등이 그 원인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심각함은 올해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만 존재하거나 자칫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광범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파견근로자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간제 근로를 제도적으로 더욱 편리하게 쓸 수 있게 용인하고 파견제를 사실상 기간, 제한 없이 전업종에 허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차별금지 조항 등을 통해 사용자의 남용을 막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어 오히려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들 법률이 비정규직노동자의 확산을 막고 그들의 처지를 크게 개선시키리라는 전망은 정부와 사용자에 그치고 노동계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실력저지를 다짐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하지만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미 노사정위원회에서 오래 논의를 했고 근기법 개정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누차 개진되었음에도 막무가내로 독립법을 만들어 제시한 것은 정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과거사 규명과 사회통합 사이의 선택

노무현 정부는 최근 친일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개혁의 중점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100년, 해방으로부터 60년, 국가보안법 제정 때로부터 56년이라는 기나긴 기간, 이 나라의 민족적 자긍심과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고 수많은 사람들을 암흑과 고통과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시대를 청산한다는 이 결단은 그야말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이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의 지배층을 장악해왔던 수구 냉전 독재세력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게 하고 그들의 숨은 저의가 무엇인가를 드러낸 것만 해도 성과라면 큰 성과다. 노동자 대중 모두가 적극 이에 찬동하는 것은 오랫동안 억눌려온 처지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늘리려는 시도에 대해 노동자들은 정말로 어이없어 한다. 더욱이 현 정부는 출범 당시 노동정책의 궁극 목표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정책을 제시했다. 노동을 배제한 일방적인 노사관계 구축이 결코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들 특히 노동시장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은 일자리 창출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적은 혜택의 일자리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상관없다는 논리이다. 나름대로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있을 것이고 한사코 투자를 기피하려는 자본에게 어떻게든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한 안타까운 바람의 발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양산으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결코 다가오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는 노동을 양극화하고 불평등을 확대시켜 마침내는 정부가 목표로 한 사회통합을 스스로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위 풍성한 명절에 좋은 일은 제쳐두고 왜 우울한 것들만 들추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일은 실제 얼마 보이지 않는데다 이대로는 자칫 노사관계 또는 노사정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확고한 근거를 갖고 완강히 반대하는 일을 그것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놓고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기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거나 권위주의의 소산이라는 것 이외에 달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즐거운 추석, 투쟁의 분노보다 평화로움과 따스함으로 희망에 찬 내일을 구상할 수 있는 날, 그 날은 아무리 봐도 현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노동정책의 본령을 다시 확인해서 먼저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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