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범 지강헌의 명언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들은 죄를 짓고도 형무소에 오지 않고 돈 없는 사람들은 작은 죄로도 형무소에서 오랜 기간 살아야 한다.” 2004년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최완주 부장판사)는 2002년 대선 당시 여야에 38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압수된 국민주택채권 1,730장(138억원)을 몰수했다.

재판부는 “국내 대표적인 기업으로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가장 큰 규모의 불법자금을 제공하고 자금추적이 어려운 무기명 채권을 전달하는 등 치밀하면서고 조직적으로 불법자금을 제공했다”고 지적했으나 “대선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의 강력한 정치자금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다른 기업인들과의 형평성 등을 감안한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로써 지난 대선 당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17명의 기업인 중 SK그룹 손길승 회장을 제외한 16명이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게 됐다.<표 참조>
 

그러나 법원의 이런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지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법조계 스스로 천명했던 ‘엄벌 방침’이 무너졌고, 여전히 정경유착의 가능성이 열렸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참여연대는 ‘법원이 불법정치자금 제공 기업인 선처기관인가’라는 성명서를 통해 “사법부가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야 할 자기역할을 다했는지 되돌아 볼 것”을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선고 뒤 항소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오는 23일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선고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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