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은 참으로 많은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이른 아침엔 자이툰 부대가 ‘국민적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로 떠났고, 저녁 무렵엔 이에 대한 항의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경찰에 맞아 쓰러진 날도 이날이다.

그런데 이날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9월 7일 저녁, 민주노총 사무실에 모인 일군의 대학생들이 그들이다. 가칭 ‘8월 3일 사태 해결과 운동사회 권위주의 근절을 위한 대책위원회’ 준비모임 소속인 이들은 8월 3일 파병반대 집회 도중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지도부 ‘일부’에 의해 심각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태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이 곳에 모인 것이다.

대체 그 ‘8월 3일’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먼저 이들의 주장을 ‘가감없이’ 소개하면 이렇다.

#. 연좌 시위 도중 일부 학생 대오를 중심으로 '파병반대! 노무현 퇴진!'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에 지도부의 한 동지가 하지 말라며 대오를 정리하려다가 이에 응하지 않자 ‘좆같은 새끼’라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에 그 동지에 대해 학생동지들이 즉각적으로 문제제기하였으나 그 동지는 사과하지 않고 되돌아갔습니다.

#. 또 한 동지의 자유발언이 이어진 후 지도부 중 한 동지가 ‘연좌시위를 마치고 열린 시민 공원으로 행진’할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지도부가 전술을 변경한 이유 혹은 판단 근거는 대중적으로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오 내에서 산발적으로 문제제기가 나왔고, 이에 그 동지는 마이크를 끄며 '남을 새끼들은 남어 씨발'이라는 욕설을 하였습니다.

#. 이후 열린 시민공원으로 이동했을 때 지도부는 사태를 해결하고자 문제제기하는 학생동지들에게 반말로 얘기를 했으며, “미친년, 씨발년, 니네가 운동을 알아? 학생주제에 뭘 안다고 까불어. 어디 4-50대한테 까불고 지랄이야”라는 발언을 했으며, “니네가 지도부 한 번 해봐. 열심히 판 만들어 놓으니까 어디서 깽판이야. 좆같은 새끼들”이라는 등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8월 3일 집회 도중 학생대오를 중심으로 지도부의 투쟁전술에 대한 문제제기와 항의가 터져나왔고, 이 과정에서 지도부 일부가 이들에게 ‘나이와 운동경력’을 앞세워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또 집회 마무리 직후 계속된 대화 도중에도 지도부 일부가 ‘성폭력’을 포함한 욕설을 계속했고, 심지어 주먹을 휘두르는 ‘물리적 폭력’까지 가하려했다고 주장했다.

자못 충격적인 대책위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현재로선 사건 발생의 ‘전후맥락’이 명확하지 않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실제로 ‘일련의 폭력상황’이 일어났음이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퇴진’ 구호를 놓고 최근 국민행동 내부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진 끝자락에 이 문제가 불거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최초로 지도부의 욕설이 터져나온 시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영순 의원의 부상 이후 지도부가 계속해서 이 문제만 강조하며 경찰폭행에 대한 사과 분위기로 집회를 끌고 갔다. 이에 상당수의 학생대오는 이런 진행은 집회의 본 목적인 파병철회 문제를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청와대로 갈 것을 요구했으나 지도부가 불성실하게 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노무현 퇴진’ 구호를 외치자, 지도부 동지 한 명이 소형확성기를 든 채로 학생대오 제지에 나섰고 이에 따르자 않자 그가 돌아서며 욕설을 내뱉었다.”

더욱이 대책위는 오히려 ‘그날 이후’에 문제가 더욱 커졌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8월 7일 이 사건와 관련, ‘학생대책위’를 꾸리고 이튿날 진상규명 및 해결요구서를 국민행동측에 보냈다. 이들은 “8월 11일에 ‘8 3 사태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이메일과 게시판을 통해 국민행동측에 참석을 요구했으나 불참했고,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한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까닭에 대해 “국민행동측의 불성실한 태도를 한달 동안 지켜보며 당사자들 간에 풀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가 나는 한편으로 무엇보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최소한 운동단체라면 그런 뜻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 보면서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

파병반대국민행동측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식적인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답하는 한편, “학생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요구하면 언제라도 응할 수 있고, 화해의 과정도 밟을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대책위를 꾸려 참여하라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식의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집회과정에서 학생들이 일으킨 분파적 행동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민주노동당 당직자의 ‘폭행사건’과 관련, ‘당내 권위주의’를 문제 삼으며 성명을 발표한 마포을 지구당의 정경섭 위원장은 “과거 엄혹했던 시절의 조직규율이 관성화되는 가운데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나이와 경력을 넘어 운동사회가 열린 의사소통의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사회 권위주의 근절’이라는 대책위의 화두가 운동사회에 던지는 자성의 단초가 될지, 또다른 ‘분란의 씨앗’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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