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힘으로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노동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의 모습을 빌어 날품팔이 노동자의 애환과 희망을 생명력 있게 담아낸 <인력시장에서>를 비롯한 5편의 시를 출품,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에서 당선된 서상규씨(49).

그가 전태일문학상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개인적인 이유였다. 지난해 12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망에 빠졌을 때 전태일의 불꽃같던 삶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전태일문학상을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늘 부끄러웠죠. 소시민적 일상에 사로잡혀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하지만 전태일의 정신은 늘 살아있는 현재였습니다.”

그는 시를 통해 일상의 사소한 삶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더 이상의 소외 없는 온전한 노동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단다.

“서정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형성하듯, 미약하지만 서정의 힘을 통해 울림과 감동을 주고 싶었죠.”

비록 강한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연민어린 시선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서정의 힘으로 터치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관된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시지프스처럼 산정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끝없는 시의 노동에 열사의 격려로 힘을 북돋울 수 있겠다.”(당선소감 중에서)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인력시장에서

서상규

때 절은 호주머니 속 동전 몇 닢이
방울경쇠로 짤랑거린다
새벽 별이 핏발 선
눈망울을 굴리며 길을 밟는다
동틀 무렵 어둠의 갈피가 푸르러지며
코뚜레를 꿴 달빛이 고삐를 바짝 조인다

날빛에 목이 졸리기 직전의
창백한 수은등 아래
그림자에 묶인 소 떼가
흰 콧김을 내뿜으며 서성거리고 있다
온기 몇 점으로 온정을 나누는 드럼통 속
불길에서 파랗게 돋은 정맥을 끄집어낸다
산맥의 혈이 뻗어 내린
힘줄로 밭을 갈던 한 시절
꿈길을 되짚어 하루 노역을 점친다

거간꾼들이 나타날 때마다
저마다 앙상한 골격을 부풀리고
순한 이빨을 드러낸다
누구도 찌른 적이 없는 야성의 뿔을 들이밀며
복종의 표시로 한껏 머리를 숙이지만
풀빛 지폐 몇 장으로 벌이는
흥정은 튼실한 소에게로 향할 뿐이다

하루치의 건초에 행운을 되새기는
눈길이 발굽에 차인다
가스러진 터럭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에
펄럭이는 살가죽을 여민 몸 속에서
운명을 삿대질하는
알싸한 공복을 다독거린다

연장가방에 단단히 물린 지퍼처럼
어금니를 질근질근 깨문다
손등을 짓찧는 망치질로 하루의 기둥을 세우고
시큰거리는 근육으로 시간을 톱질할 수 있다면
굳은살이 아픔 없이 뜯겨나가는 나날이다

아침 출근에 바쁜 사람들 틈에서
하루의 시간을 접으며
햇살에 축문 적은 소지를 사른다
생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끄덕
발뒤축을 좇는 그림자의 고삐를 끌며
햇무리에 방울소리를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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