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공세나 노동자간 분열이 성공하게 된 것은 민주노총이 내세운 비정규직 차별철폐나 연대임금정책 등 사회운동적 방향이 보다 철저히 조합원이나 투쟁 속에 각인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지난 23일자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쓴 글의 일부이다. 김 원장은 보수언론의 매경 등 경제신문과 조중동, 방송사들의 노조비난 공세에 대해 “저들은 항상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우익언론이라고 비난만 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라며 그러한 언론의 공세가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조합원을 동요시키고 노동운동을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만들고 있는” 현상의 원인을 노조운동 내부에서 찾을 것을 제안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도 <매일노동뉴스>의 19일자 <그루터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노조쪽은 자본과 권력이 노동운동을 탄압한다고 분노하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는 길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시장주의 성장논리가 득세하고 수구 보수언론이 여론조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조의 모든 투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노동운동의 안팎에 노조의 위상과 전망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략)… 상대를 너무 가벼이 보거나 상황변화와 주체역량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아닌지 되짚어 보고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과 주장은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간의 의미까지 살피게끔 만든다. 노조운동의 바깥에 있거나 무관한 사람들은 쉽게 노조를 비판하고 나무랄 수 있지만 그들의 편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먼 미래를 위해 지금 꼭 짚어 보아야할 문제가 노동운동 안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단병호 의원도 지난 25일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해서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IMF를 전후로 하여 비정규직이 많이 양산이 되었고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쟁점이 되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는 적은 것 같다. 우리 내부 또한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이것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점점 엷어지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26일 취임 3개월을 맞는 기자간담회에서 “고임금노동자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때로 임금을 자제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비정규직 등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은 자신의 변함없는 ‘소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칼 마르크스는 150년 전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은 위대하다”고 썼지만 “그러나 혁명적이지 않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늘날 이 말의 의미를 되살려 본다면 “노동자운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자와 노동운동이 때로 비틀거리며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서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 일어서기 때문이다. 해마다 수많은 다리가 끊어지고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더라도 사람들이 강을 넘어 오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 항상 수고를 들여 새로 다리를 놓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끝으로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G칼텍스정유에서는 노동조합의 파업이 철회된 이후 무더기 징계와 함께 복귀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비인간적인 ‘노조원 사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인근의 LG화학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인해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장시설의 안전 문제는 뒤로 한 채, 집요한 개별면담 과정을 통해 노조원들을 굴복시키고 남아 있는 불만자들을 솎아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사용자들이 이렇게 나올수록 노조운동의 소중한 자기성찰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차라리 끝장을 보더라도 타협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의 양극화와 분절화 등으로 피폐해지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문제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보자는 사회적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다. 신뢰는 사라지고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도 잃고 오로지 자기의 이익과 주장만 고집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이것만은 아니지만 기업과 자본의 성찰이 더욱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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