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늦은 감도 없지 않았지만 지난 주를 여름휴가일로 택하고는 지리산 자락 절집을 순례하는 것으로 일상의 번뇌를 떨쳐보려 했다. 마지막 일정은 남원시 산내면에 위치한 실상사. 가는 길이야 여러 갈래였겠지만 화엄사 경내를 둘러보다 내친 김에 성삼재로 올라 실상사를 찾기로 하고 노고단과 만복대로 갈라지는 그 가운데쯤 ‘시원(?)’하게 아스팔트가 깔려진 그 길을 택했다. 산길보다는 찾아가기도 수월하고 내심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내내 나의 안일한 판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리막길인 탓에 온갖 차들이 원심력을 받아 튕겨나가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달리며 온갖 매연을 쏟아부어 나 역시 인상을 찌푸려야 했고, 가끔 그 무서운 속도에 놀라 갓길로 몸을 흠칫 빼면서 조심스런 걸음을 걷기도 해야 했다. 그런데 더 끔찍했던 것은 군데군데 차 바퀴에 깔려 죽은 다람쥐나 뱀을 만나는 일이었다. 애당초 그 길은 인간의 ‘빠름’을 위한 길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야 겨우 찾아낸 지리산 반달곰 같은 먹을 거리나 제 짝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산짐승과 산새들을 위한 길이었다. 그제서야 지리산생명연대 등의 단체에서 적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은 밤 시간에만이라도 아스팔트 깔려진 그 길에 차들이 다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생각났다.

산내면에 도착해 찾은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실에서 한 상근자에게 고해성사하듯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그는 내게 또다른 얘길 전해준다. “지금 천성산 살리기를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이 50일이 넘었는데요, 고속철도(대구~부산) 천성산 공사를 해도 가는 길은 겨우 22분 빨라진답니다. 이 곳 지리산 자락도 마찬가지에요. 현재 남원시에서는 2차선인 인월에서 백무동쪽 가는 길을 4차선으로 넓힌다고 하는데요, 예산도 천억 가량 들어갈 뿐 아니라 생태계 파괴도 엄청날 꺼거든요. 그래서 빨라지는 시간이 얼마인 줄 아세요? 겨우 7분입니다.”

천성산 공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등을 요구하며 진행중인 지율스님의 단식이 23일로 55일째에 접어든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이미 목숨이 끊어질 상황이라고들 하지만 지율스님은 천성산 일대의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를 막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밤이 지나 다음날’에도 숨을 계속 쉬고 있는 듯하다. 스님의 바람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법률 대응의 방법으로 천성산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종인 꼬리치레도룡뇽을 원고로 한 ‘자연의 권리’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진행 중인 터널공사를 6개월간 중단해 달라는, 그리고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 당시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21일 성명을 내고 “법적인 절차상 문제가 없으므로, 공사 중단이나 환경영향평가의 재실시는 불가능하다”는 16일의 환경부 발표는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관으로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율스님의 바람과 인간의 ‘기계화’에 맞서 자연생태 보존의 필요성을 느낀 많은 이들의 마음을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정녕 지율을 죽일 작정인가? 지율을 향한 저 거대한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모든 곳이 천성산인데 지율은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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