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신문시장이 공정한 ‘진보-중도-보수’ 신문으로 재편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필요조건의 기본은 ‘공정한 신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이를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4일 발표한 보고서 ‘자산 5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의 소유 현황’에 대한 각 신문의 보도태도가 그것이다.

먼저, 이 보고서는 매우 큰 관심 사안이라는 점을 지적해 두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순자산의 25%까지만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가 투자를 방해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사실관계가 논란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보면, 이 제도의 적용대상인 자산 5조원 이상(공기업 제외) 대기업집단은 15개였고, 이들의 순자산은 141조원, 출자총액은 34조9천억원이었다. 출자총액은 순자산의 25%인 35조2천억원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동종업종이나 밀접업종에 대한 출자처럼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을 받은 출자액이 전체 출자총액 34조9천억원의 54%인 19조원이나 됐다. 이를 감안하면, 출자 여력은 19조3천억원이나 된다. 엄청난 금액이다.

출자총액규제, 거짓 주장과 진실은?

물론, 이 보고서의 내용을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는 기자의 성향과 각 신문사의 논조에 달려 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지만, 출총제의 적용을 받는 기업집단들이 이로 인해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느냐 하는 쟁점은 그동안 논란의 핵심 사안인 만큼 충분한 관심과 조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조중동의 보도태도는 기대 이하였다. 세 신문 모두 경제섹션 1면이 아닌 2면으로 ‘후방배치’한 공통점을 보였다. ‘후방배치’된 보도의 내용은 더욱 큰 문제다.

조선 8월5일치 B2면 하단에 실린 ‘쥐꼬리 지분으로 공룡 지배’란 4단 기사(표 포함)는 재벌총수의 평균지분률이 1.5%밖에 안 되는데도 계열사 지분을 앞세워 지배하고 있다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다.

출총제의 투자 제한 여부는 전혀 언급이 없다. 중앙 8월5일치 E2면 3단기사 ‘전경련-공정위 신경전, “출자제한은 차별” “투명성 아직 멀어”’ 역시 출총제가 투자를 방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공정위 보고서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출총제의 적용을 받는 15대 기업집단의 추가출자 여력이 19조원에 이른다는 언급은 없고, 그저 “전경련은 자산 규모가 4조원대인 그룹들이 자산이 5조원을 넘으면 출자총액제한을 받기 때문에 자산을 늘리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아의 경우 그나마 낫다. 8월5일치 B2면 3단 기사 ‘대기업 12사 출자총액한도 위반’에는 “전체 출자총액에서 적용제외와 예외인정분을 뺀 출자비율은 10.4%로 나타났으며 18개 그룹은 출자한도(순자산의 25%)까지 22조6천억원을 추가로 출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구절이 있다.

물론, 이런 구절이 이 기사의 소제목 등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 자체가 없는 조선이나 중앙보다는 그나마 ‘양심’이 있는 셈이다.

경향신문의 경우, 핵심 내용이 있긴 하지만 부족하기 짝이 없다. 8월5일치 25면 3단 하단기사 ‘대기업 총수 주식 1주 안갖고도 계열사 3곳 중 2곳 좌지우지’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말을 빌려 “재계는 아직도 법 테두리 내에서 22조원 이상을 출자할 여유가 있다”고 밝히고만 있을 뿐이다.

한겨레는 같은날 1면에서 ‘재벌 규제대상 출자, 상한 25% 못 미치는 11%, 추가투자 여력 20조, 공정위 “출자규제가 투자 발목은 주장은 잘못”’이란 제목의 3단 기사를 싣고, 27면에 ‘재계 출자규제 반대논리 무색’이란 관련기사를 실었다. 다른 신문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헛박자 따라 춤추는 여당

아마도, 의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런 식의 축소․왜곡된 대다수 신문들의 의제설정 때문일 것이다. 국회 규제개혁특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김종률 의원은 8월9일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출총제의 폐지를 추진하되, 이것이 힘들 경우 출자한도를 현행 25%에서 40%로 대폭 올려주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한다.

안병엽 열우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은 “출총제는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계속 억제할 것인가, 투자나 성장이 중요하니까 경제력 집중 억제를 감소시킬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역시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요점을 빗나간 의제 설정이다.

열우당 안에서 이런 빗나간 의제설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 언론은 이를 확대 증폭할 것이다. 결국, 도대체 언제까지 같은 소리 반복하느냐는 독자들의 짜증 속에 ‘실사구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국민경제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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