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국회는 여전히 성역이다.

노동자 농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민주노동당 10명의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지만, 노동자들이 국회 드나들기는 여전히 힘들고 까다롭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4일 오후 국회 정문에서는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방청하러 국회를 들어가려던 두 명의 노동자가 경찰 소속 국회경비대에 가로 막힌 것.

ⓒ 매일노동뉴스 조상기 기자
경찰들과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은 이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10여분간 철문을 닫아 버리고 이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이들은 단 의원실에 연락을 취해 의원실의 신원보증을 받고 나서야 사복경찰관과 동행해 본청 앞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장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본청 지하 1층에 다다르자 현관을 담당하는 국회사무처 방호원들은 이들이 입고 온 ‘노조 조끼’를 벗고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또 한 차례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노동자들은 조끼를 벗고 금속탐지기로 몸 수색을 당한 후에야 본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방청권을 받아서, 본회의장 방청석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또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국회 사무처 경위들이 다른 방청객들과 달리 이들에게만 유독 금속탐지기로 다리 사이까지 샅샅히 검색했기 때문.

본회의장 안에서 이들 앞뒤로 경위들이 밀착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이 과정에서 시간을 뺏겨 단 의원이 ‘비정규 노동자를 대표’해서 했다는 ‘역사적인’ 대정부 질문을 절반밖에 볼 수 없었다.

최종호 전북일반노조 차장은 “국회 정문 앞에서 15일동안 1인 시위를 했기 때문에 경찰은 우리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모욕감이 들 정도로 검색을 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국회출입이 어려운 것은 이들 ‘투쟁사업장’ 비정규노동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14일 오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결성된 ‘노동기본권 국회의원 연구모임’ 창립식 외빈 자격으로 국회를 들어오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과 국회 관계자들은 이 위원장이 신분을 밝혔음에도, 차를 세우고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검색을 했다. 이날 모임에서 이 위원장은 이런 사실을 말하면서 “국회는 노동자들에게 찜찜하고 혼란스러운 곳”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하러 가는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과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은 사건과 관련해 보름이 넘은 15일 현재까지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 의원과 민주노동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행정자치부 장관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당국은 현재까지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어물쩡’ 넘기려 들고 있다.

국회사무처 경위과 관계자들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질서유지와 사고 예방 차원에서 검문을 할 뿐”이라며 “국회를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일한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또 “2001년에도 한 노동자가 방청석에서 본회의장으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다”면서도 “시위를 하다가 온 노동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검문 검색을 강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 소속인 국회경비대 관계자도 “의원실이나 사무처에서 신원을 확인하면 바로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며 “국회는 시위금지구역이여서 난동을 부릴 소지가 있는 민원인으로 예상이 될 경우 난동을 사전에 막는 차원에서 시위용품이나 흉기, 피킷 등을 맡기게 할 뿐 출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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