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은행 노사의 잠정합의에 대해 노동계는 예상을 깨고 18일간의 장기파업을 이끈 한미은행지부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 초국적 자본과의 투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된 것에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외국계은행에 맞서 금융산업의 공공성을 전면적으로 제기한 첫 싸움이라는 데 큰 의의를 두기도 했다.

한국노총 이현수 조직본부 국장은 “대외국자본 투쟁에서 기업별노조만의 대응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한편 “금융노조 차원의 연대파업으로 발전했을 경우 초국적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의 모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무금융연맹 김창희 정책실장은 “외국자본의 맹공에도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장기파업을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지금의 한미사태를 초래한 것은 외국자본에 금융산업을 통째로 내놓은 재경부 경제관료 등 정부 당국인데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이후 대책을 촉구하는 측면은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가 밀어붙이면 결국 사용자는 밀린다는 한국식 노사공식을 깬 파업”이라는 평가에서 보듯, 씨티그룹의 노사관과 경영권에 대한 금융노조의 도전을 관심 있게 지켜본 것으로 보인다.

최재헌 경총 정책본부장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는 외국계 기업과 근로조건의 범위를 넘어선 경영권 등의 과도한 주장을 해온 잘못된 한국 노동운동이 부딪힌 게 이번 사태”라며 “한미은행의 사례처럼 앞으로 노조가 경영권의 핵심사항을 요구하는 파업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누구보다 조속히 사태 마무리를 촉구해온 금감원 등 감독기관들은 일단 잠정합의안 도출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상당수 조합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언론보도에 당장 내일부터 영업점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은행검사1국 윤익상 부국장은 “하루 빨리 영업이 정상화되는 것이 소원”이라며 “영업정지와 같은 최후의 수단을 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상장폐지, 독립경영 등과 관련해 별도의 회의록을 채택하는 등 외국계은행 진출과 관련한 노조의 강경한 대응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미은행 상장폐지가 국내 금융감독 회피 및 한국 회계 관행에 반하는 영업이익의 과도한 해외송금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조항과 관련해 “동북아금융허브를 추진하고 있는 때에 (이러한 노조대응이) 대외이미지 손상 등이 우려될 수도 있어 상당히 난처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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