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물거품이 된 지금, 온 나라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러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은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김선일씨 참수 사건은 반미 테러집단의 극단주의와 노무현 정부의 안일한 대처,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그릇된 이라크 정책이 결합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30일로 예정된 정권 이양을 앞두고 이라크 저항세력과 알-카에다 등 반미 테러집단은 미국 주도의 임시정부 수립을 저지하고 동맹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격에 나서왔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와 국회는 이라크의 현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추가파병을 강행함으로써, 결국 오늘날의 참극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특히 한국의 추가파병 결정은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과 팔루자 학살, 그리고 미국 주도의 임시정부 수립 등 민감한 문제들을 외면하고 내려진 결정이어서 이라크 저항세력을 더욱 자극시킨 측면이 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결정은 많은 나라들이 군대를 철수시키고 파병결정을 철회하는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보이면서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미국의 부역자로서의 한국'을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미국의 부역자’ 낙인을 원하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향후 대처 방안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그 동안 정부와 여당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한국인 피격·납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이번 김선일씨의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다. 그것은 추가파병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구하는 어떠한 대책도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그 단호함 못지 않게 안일함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화법과 흡사한 것으로써, 오늘날의 미국이 보여주듯 더욱 큰 테러위협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라크 저항세력과 반미 테러집단은 자신들의 대미 항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그 동조자의 축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공격 목표에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파병 국가가 되려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면서 추가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무고한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이라크 저항세력과 반미 테러집단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온갖 수단을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테러세력의 척결에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추가파병의 정당성을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설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파병의 강행은 사실상 이라크 저항세력 및 반미 테러집단과의 전면전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극심한 테러 공포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파병 정당성 설득은 불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테러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추가파병을 강행할 경우, 이라크 저항세력의 눈에 한국은 미국과 동일시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부시 대통령은 김선일씨 피살 직후 "한국은 수천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는 계획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단속에 나섰고, 이에 호응하듯 노무현 대통령도 "파병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이라크 저항세력과 반미 테러집단을 자극시키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불확실성과 위험성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의 곤혹스러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곤혹스러울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원칙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국익은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 역시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던" 김선일씨가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오면서 더욱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앞에 우리 국민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탄핵을 국민의 힘으로 물리친 것과 마찬가지로 파병도 막았다면, 김선일씨의 참혹한 죽음을 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결연히 일어서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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