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총파업이 노정간의 협상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9월말까지는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경영평가위원회의 결과가 제출되는 10월중순 이후부터 구조조정이 급진전되면 잠복했던 문제들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은행구조조정의 성과와 향후 과제', 2000.7)"

올 하반기 노사, 노정간 핵심 현안 가운데 하나인 금융권 2차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와 유가급등, 주가폭락 등의 악재가 겹쳐 경제환란의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구조조정의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전망이다.

* 6개은행 경영평가 결과 나오는 10월 중순 이후가 최대 고비

정부여당은 지난 19일 긴급경제당정회의를 열고, 내년 2월이던 금융·기업 구조조정 완료시한을 올해 말로 앞당기고, 3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지주회사법 등을 조속히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당정은 이날 4대부분의 차질없는 개혁, 공적자금 추가조성 및 일정 공개 등으로 개혁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 위기를 불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경제위기에 대한 여론의 우려 속에 정부의 '속전속결' 방침이 제기됨에 따라 이에 자극받은 노동계가 반발에 나설 것은 손쉽게 예측할 수 있는 대목. 따라서 7·11금융총파업 및 노정합의 이후 다소 소강상태를 보여온 금융구조조정은 다시금 본격적인 갈등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방침은 가급적 시장기능에 따라 금융기관간 인수합병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이다.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보다는 감자 및 공적자금 투입을 거쳐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로 편입시키거나 금융지주회사로 묶어 대형화를 추진하는 것이 2차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물론 우량은행 및 중소규모 은행간의 전격적인 합병은 언제든 가능한 '경우의 수'다.


*경영평가 대상 6개은행, 노사협상 '표류'

이번 경영평가대상은행의 선정 기준은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2000년 6월말 기준 BIS비율 8%에 미달하는 은행으로, 조흥, 한빛, 외환, 평화, 광주, 제주 등 6개은행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해 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인 5조원 가량이 이들 은행들에 투입될 전망이다.

이들 은행은 7·11 노정합의에 따라 9월말까지 경영정상화계획서를 제출하고 경영평가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독자생존여부를 판가름하게 된다. 따라서 경영정상화계획서와 관련한 해당은행 노사협상이 일차적인 대립지점을 형성하게 될 전망이다.

노사간 최대쟁점은 경영정상화계획서에 포함될 '수익성재고계획' 중 '경비절감 등 경영합리화 계획'이다. 여기에는 인력감축, 임금삭감 및 급여체계 변경 등의 내용이 첨부돼야 하는데, 금감위는 이 항목과 관련, 은행측에 노조와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노조측은 이 항목은 경영정상화계획과 무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계획서에서 삭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6개은행의 노조대표자들은 지난 15일 회의를 갖고 "이 항목은 노사간 자율교섭을 저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므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모으고 은행과 개별적으로 합의해 주지 않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 이에 따라 '데드라인'이 불과 열흘도 남지 않았음에도 인력감축 등 쟁점에 대한 노사간 협의는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표 참조).

* 경영평가위원회 구성도 어려운 문제

경영정상화계획서와 관련한 마찰이 해당은행 노사를 중심으로 불거지는 반면 경영평가위원회 문제는 금융노조와 정부간의 갈등을 야기할 전망이다. 현재 노정은 경평위의 위원장 및 위원 선임과 관련해 신경전에 한창이다. 노조는 위원장 선임시 노사정위원회 금융특위의 합의와 2인이상의 추천권 부여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노정간 원만한 합의도출이 없을 경우 경영평가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두고두고 분쟁의 소지를 낳게 된다는 우려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정부 독단적으로 경평위가 구성된다면 여기서 이뤄진 평가의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평위의 평가 결과, 정상화가 어렵다고 판정받은 은행은 노사 공히 반발하게 될 것이고, 평가에 대한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대로 모든 은행들이 정상화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경우에도 문제가 심각하다. 구조조정의 후퇴 및 대외신인도 악화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구성되든 경평위는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금감위가 적임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J모 교수 등 신망있는 인물들이 한사코 고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발간된 노사정위위원회의 '금융구조조정과 고용안정 방안' 연구용역보고서는 "지난 98년초 은행 경영평가위원회나 98년 중반의 증권회사 경평위가 1차 금융구조조정의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중요요인을 작용했음을 감안, 위원구성 시 노조후보 추천권 부여 등 등 노조의 의견을 반영할 것을 제언하고 있기도 하다.

* 노조, '트리플 악재' 속에 대응책 마련 부심

이처럼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자연히 관심은 금융노조의 대응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 조짐과 감사원의 공기업 경영실태보고 파문 등 정부의 여론전이 주효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최근 산하 주요 조직들의 현안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조직의 결속력이 총파업 당시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점도 부담스럽다.

금융노조는 아직 구체적인 투쟁일정을 수립하고 있지 않지만, 이달말 한국노총 회원조합 대표자세미나 등에서 협의을 거쳐 마련될 전망이다. 노조는 일단 인력감축 등의 저지에 주력하는 한편, 정부의 여론몰이에 맞서 정부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면서 여론전을 펴겠다는 입장이다. 김기준 사무처장은 "현재 경제위기는 구조조정이 늦어서가 아니라 정부 정책 자체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쟁점화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표 구조조정 대상은행 인력감축 관련 노사 주장
은행명 은행 노조
조흥은행 계획없음(명예퇴직 검토)
한빛은행 정규직1,550명(15%)및비정규직200명감축 수용불가(희망퇴직은 검토)
외환은행 15%(약 800명)감축 수용불가(증자가전제된 독자생존 방향의 정상화계획이라면 소폭에서 협의가능)
평화은행 계획없음
제주은행 노사협의한 바 없음(2000년6월 80여명(20%) 명예퇴직)
광주은행 노사협의한 바 없음(2000년4월 109명(10%) 회망퇴직)

※서울은행 도이체방크와의 자문계약으로 경영평가은행에서 제외, 다만 구조조정은 지속적 추진 2000.9.1일 650명 명예퇴직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