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호흡기로 근근히 연명해 오던 노사정위원회가 본격적인 수술대에 놓이게 됐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노사정 대표 6명으로 이뤄진 ‘지도자회의’가 지난 6월4일 본격 가동한 가운데, 기존 노사정위를 ‘경제사회위원회’로 바꾸자는 시민단체의 제안도 나왔다. 이는 명실상부한 ‘사회협약기구’로 만들자는 안이다.

5년 만에 사회협약기구 활성화를 위한 논의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하지만 노사정위(또는 경제사회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흐름 역시 엄존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5시 노사정위는 정부의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추진 중이던 배전 분할이 중단돼야 한다는 노사정위 공동연구단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노사정위 공공부문구조조정특위가 지난해 9월부터 운영했던 ‘합리적인 전력망 산업 개혁방안 연구단’(단장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이 최종보고를 통해 “배전 분할을 전제로 한 도매시장 경쟁의 도입은 가격 문제, 공급안정 등에 있어 기대편익이 불확실할 뿐 아니라 예상 위험이 상당하다”며 “정부의 배전 분할 추진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도 가치, 무엇으로 판단했던가

대통령이나 소관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관련한 공동연구단의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에 걸쳐 약속해 왔던 터였다.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이 전면 재검토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동아일보>는 6월1일치 1면에 3단 크기의 ‘공기업 민영화 제동’이란 제목 아래 ‘노사정위 한전산업 분리 말아야’ ‘5년여 추진 사업 무산위기’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A3면에 실린 4단 해설기사에는 ‘에너지사업 구조개편 물거품’이란 부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2면에 ‘노사정위 “발전,배전 분할 중단돼야”, 전력산업 구조개편 차질’이란 부정적인 제목의 2단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6월1일치에서는 연구단 결과를 단 한 줄도 볼 수 없었다. 아예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중앙일보가 ‘보도 가치’가 없었다고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산자부가 노사정위 공동연구단의 발표 이후 ‘정부의 공식 견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해명자료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중앙일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산자부의 해명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사정위 공공부문구조조정특위는 다음 회의를 열어 공동연구단의 연구결과를 최대한 존중해 정부에 대한 권고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결과에 대한 내부 조율을 거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공동연구단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한 줄도 보지 않는 <중앙일보>는 노사정위의 이런 내부 조율과정에 어떻게 개입할까. 아마도, 산자부 관료들이 공동연구단 연구결과를 최대한 ‘물타기’ 하려는 시도를 계기로 터져 나올 불협화음을 ‘뻥튀기’ 하는 보도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산자부와 언론에 책임 물어야

노사정위 공동연구단의 발표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만큼 노사정위와 경제부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지금의 흐름을 보면 공동연구단의 연구결과는 존중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난다면 너무 허탈하다. 만약 중앙일보가 조율과정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상술’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과 ‘경쟁원리’라는 추상적인 대의명분이 갖는 매력을 독자들에게 팔아먹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다.
노사정위 공동연구단의 연구결과는 이런 상술에 미혹되는 독자들을 막는 결과까지도 낳아야 한다.

그래서 ‘마무리’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배전부문에 도입하게 될 독립사업부제는 환경단체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까지 포함하는 등 혁신적인 방향으로 구성하고, 내부 경쟁과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산자부 관료들에게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맹목적인 ‘시장’과 ‘경쟁원리’라는 교조를 앞세워 수천억원의 세금을 사용한 책임을 산자부 관료들에게 반드시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발전,배전 부문에 대해 맹목적인 민영화를 다그쳐온 언론보도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전력노조 차원의 구독 거부 운동으로 연결해야 한다. 우리가 달성해야 할 마무리 작업에는 단지 산자부 관료들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이를 부추겨온 ‘신자유주의로 갈아탄 수구세력’을 향한 분노도 담겨야 한다.

민주노총은 곧 언론특위를 구성할 계획이다. 발전,배전 부문에 대한 맹목적인 민영화를 추구해온 언론에 대한 폭로,고발과 구독 거부운동, 민주노총 언론특위의 제1차적 과제를 여기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노동자가 ‘경제를 따라잡는’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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