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 지난 날 노동자들이 당한 고초는 원천적으로 독재권력의 제도 법률상의 반민주적 규제와 권력기관의 직·간접적인 억압조치들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표면상 사용자들의 횡포 때문에 빚어진 것도 사실은 국가권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노동자들에게 민주화운동보상법을 적용할 때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70, 80년대 독재정권 시절에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노동자들이 요즈음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법' 적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 참담했던 고통과 희생을 보상받으려는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치가 떨리는 잔혹한 억압에 맞서 생명을 걸었던 자신의 투쟁이 민주화 대장정의 한 페이지에 생생하게 기록되는 역사적 보람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민주화운동 보상법'은 이 노동자들의 소박한 기대를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까? 하지만 법은 인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법은 '민주화운동'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항거'는 "직접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 뿐 아니라 학교·언론·노동 등 사회 각분야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해 행하여 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노동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독재권력과 사용자에 저항하여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은 모두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제의 대상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법은 오로지 국가권력에 의해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권력에 의해 명백하게 저질러진 삼청교육대 피해자는 제외하고 있다. 거기다가 신청자격을 "사망·행방불명·부상·질병·유죄판결·해직된 자"로 못박고 그것도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에 의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박탈했다. 그리고 80년대 초 신군부정권은 폭력적인 '노동조합 정화조치'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감옥과 삼청교육대에 보내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노동관계법을 개악하여 노동운동의 숨통을 조르고 민주노조들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한 탄압은 학생들이나 지식인들과는 달리 복잡하고 입증하기도 어렵다. 저항에 앞장 선 노동자들을 경찰·검찰·중앙정보부 등 국가권력기관은 시도 때도 없이 강제연행·투옥·감시·수배·폭행·고문하고 해고시켰다. 이들에게 권력기관은 영장도 없이 눈에 거슬리면 언제든지 탄압을 가했다. 신군부의 노동조합정화조치와 민주노조 파괴는 노동자들에 대한 권력이 취할 수 있는 폭력적 탄압의 극치를 이루었다.

한편 사용자들은 국가권력의 법률 제도상의 위압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을 짖눌렀다. 노동자들이 노조결성 및 활동보장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노조에 지배·개입하여 노노분쟁으로 유도하거나 노동자들을 해고·고소·고발하고, 권력기관은 주동자를 강권으로 잡아넣거나 행정관청의 판정 해석을 통해 해고·징계 등 탄압조치들에 대해 면죄부를 던져주었으며 때로는 상급노조를 앞장세워 노동자들을 누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뿐 아니었다. 국가권력은 노동자들에게 '불순·위험분자'의 딱지를 붙여 개별적인 생존권까지도 가로막았다. 블랙리스트가 그것이었다. 1978년 동일방직인천공장 노동자들의 저항투쟁을 계기로 나타난 블랙리스트는 국가권력의 협조와 방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1980년 5.17이후에는 기업·노동부·정보기관 3자가 합작하여 1천여명의 노동자명단을 작성하여 지니고 노동자들의 생명줄을 옥죄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지난 날 노동자들이 당한 고초는 원천적으로 독재권력의 제도 법률상의 반민주적 규제와 권력기관의 직·간접적인 억압조치들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표면상 사용자들의 횡포 때문에 빚어진 것도 사실은 국가권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노동자들에게 민주화운동보상법을 적용할 때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려 한다면 법규정의 한계를 넘어서서 폭넓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십 수년 동안 짖눌러왔던 좌절과 울분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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