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수 의석을 얻은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에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원칙적으로 주식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민연금법을 ‘전면 허용’ 쪽으로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중장기 정책방향으로 세운 지는 이미 오래다.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서다. 1998년 1조1,700여억원에서 2002년 5조원, 2003년 7조6,400여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에는 11조여 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주식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3%대에서 올해 8.2%로 급격나게 돼 있다. ‘원칙 금지’라는 규정은 이미 사문화한 셈이다. 2012년까지 20%(80조~120조원)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원칙 금지’ 이미 사문화

노동계는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 노후생계를 보장하는 공적 연금제도로 국민연금을 발전시키는 데 열중하기보다, 주식시장 부양이라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정부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18~59살 인구 중 노후에 공적연금(국민, 군인, 사학,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수는 1,168만명(38.9%)에 그치는 반면, 사각지대에 속한 인구가 무려 1,835만명(61.1%)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국민의 노후생활을 위한 안전판인 국민연금을 변화가 심하고 불안정한 주식시장에 투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무시하지 못할 반대 이유이다.

개인적으론,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 달마다 1조원씩 늘어나면서 현재 112조원을 웃돌고 있는 국민연금을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지분이 44%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나 투신사와 증권사 구조조정 등 남아있는 민영화 과정에서 그마나 금융기관의 ‘국적’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의 하나가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사모펀드를 구상하고 있지만, 이보다는 뮤추얼펀드 형태의 사회적책임투자(SRI) 펀드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제한적 ‘사회적 책임투자’는 몰라도

하지만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식투자 확대를 전면 허용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에 반대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나아가, 현재 국민연금을 정부의 ‘쌈짓돈’으로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가 한층 더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기금관리운용위원회의 운용권을 빼앗아 기획예산처에 넘긴 데 이어, 가입자 대표를 과반 이하로 줄이고 가입자 대표의 직접참여권을 박탈해 추천권만을 부여하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21명의 위원 가운데 12명인 가입자 대표를 4명으로 줄이고,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위기구로 연금정책협의회라는 정부부처간 회의를 두어 국민연금기금 운용계획안을 짜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왜 그럴까? 지난 4월14일 그 이유를 보여주는 일이 발생했다. 국민연금이 미국 국채에 처음으로 투자한 것이다. 국내에서 달러를 조달해 만기 5년짜리 미국 국채 4억2,300만달러 어치를 사들인 것이다. 국민연금이 올해 중으로 미국뿐 아니라 일본ㆍ유럽 등의 국채에 투자할 규모는 2조7,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미국 국채 수익률이 국내 국채 수익률보다 1.5~1.7%포인트 낮은 사정을 감안해 그 격차를 메워주기로 약속했다.

가입자 배제의 속셈

미국 국채에 국민연금을 투자한 이유는 환율 안정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다. 정부는 원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환율안정용 국채를 발행해 달러를 사들여 왔다. 올 들어서만 이미 5조원을 넘었고, 이에 따른 이자 부담만도 연간 3,000억원을 웃돈다.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이 달러를 사들여 미국 국채에 투자하게 하면, 국내 달러 공급이 줄어 원화 가치 상승 압력이 감소하는 효과와 함께, 미국 국채와 국내 국채의 수익률 격차만큼만 보전해주면 되는 정부는 이자 부담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다. 이것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에 국민연금이 투자되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과정이 베일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도입과 복지인프라 건설 등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할 분야들이 널려 있는데도 국민연금을 해외 국공채를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없다는 얘기다. 해외 국공채 매입에 따른 이차보전은 해주면서, 그동안 국민연금 강제예탁에 따라 가입자에게 물어줘야 할 이차보전분 1조6,200억원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말도 없다. 국민연금 운용을 둘러싼 지배구조의 민주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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